9. 성령

제2의 발람 선지자

오은환 2021. 7. 15. 11:48

선지자도 타락할 수 있을까요?

발람 선지자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왜 그는 그렇게도 물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을까요?

 

1. 발람 선지자

모세오경에서 선지자다운 모습으로 등장한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발람입니다.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발람 선지자의 모습을 자세하게 언급합니다(민22-24장).

마치 멜기세덱처럼 그는 갑자기 등장합니다.

발람이 선지자로서 활동했다는 것은 주변에 많은 성도들이 존재했음을 의미합니다.

 

발람 선지자는 메소보다미아 강가 브돌에 거했습니다(신23:4).

그는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받았던 말씀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기록이 없습니다.

성령의 임재를 통해 종종 말씀을 받았습니다.

 

* 그가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민24:3-4)

 

그는 참다운 신앙고백을 합니다.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어떤 자들은 발람이 처음부터 거짓선지자라고 하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민22:18)

 

2. 제2의 발람 선지자

결론적으로 발람 선지자는 물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타락했습니다.

멜기세덱처럼 갑자기 등장했지만 그의 종말은 비참했습니다.

물질과 함께 영원히 사라졌으며 후세에 가장 부끄러운 이름으로 등록되었습니다(벧후2:15, 유1:11, 계2:14).

 

발람 선지자가 물질의 유혹에서 넘어졌다면 오늘날 선지자로 불리는 많은 자들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특별히 말씀을 해석하는 일에서 종종 넘어집니다.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명예와 권위 곧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또 발람처럼 물질적인 것에서 부요하고픈 이유 때문입니다.

 

1) 연구하는 것인가? 계시를 받은 것인가?

선지자들의 지식은 받은 말씀(계시)뿐일까요?

베드로는 선지자들의 성경연구를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선지자들은 받은 말씀들을 자세히 연구했습니다.

 

*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벧전1:10)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는 일은 선지자들의 또다른 책임입니다.

선지자들은 예언을 연구하는 일에도 성령의 조명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했던 이런 연구들이 어떤 결론을 맺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습니다.

아마도 자신이 받은 예언이나 다른 선지자들의 예언들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듯합니다.

 

오늘날 선지자가 있습니까?

적지 않은 사역자들이 자신들이 받은 말씀들을 간증합니다.

천국 간증이나 말씀 혹은 신유(내적, 외적) 사역을 활발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의 상당수가 성경해석에 돌입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신들의 해석은 성령의 영감과 조명을 따라 행하기에 흠이 없다는 논리에 빠집니다.

특별히 계시록이나 종말론을 해석하면서 많은 오류들을 드러냅니다.

그 결과 구원론까지 심각한 왜곡이 일어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받은 것만 예언하고, 나머지 연구한 분야들은 개인적인 연구로 보아야 하는데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 결과가 예상하지 못한 왜곡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2) 천국간증자의 종말론 해석

서사라 목사는 자신의 아버지가 천국에서 농부로 일하고 있다고 간증합니다.

성경은 지금 천국에서 어떤 성도들의 영도 일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부활체로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농부로 채소를 심고 거두는 일을 한다는 주장은

성경전체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변의 존경받는 목회자들이 천국에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자들이 <성 밖>에서 훈련받고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천년동안 성 밖에서 연단을 받으며, 천년왕국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구원은 받는다고

하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자신의 이러한 해석들은 오류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자기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궁금해 할 때 하나님께 물어 보았는데 답변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성경해석에 권위를 입혀버립니다.

의문을 제기하는 자는 불경한 자로 낙인찍어 버립니다.

 

성 밖에 있는 자들은 다 불못에 던져지는데 어떻게 부끄러운 성도들이 되겠습니까?(계21:8, 22:15)

이러한 혼란이 한국교회 가운데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신을 선지자로 여기는 분들은 그에 합당한 책임이 따릅니다.

조금이라도 자기를 높이며 드러내고자 하는 유혹에 빠진다면 곧바로 제2의 발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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