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성령

칼빈과 알미니우스의 신학 비교

오은환 2021. 5. 9. 14:53

칼빈(1509-1564)과 알미니우스(1560-1609)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서 직접 만날 일은 없었습니다.

알미니우스는 칼빈이 소천할 즈음에 태어났지만 칼빈의 제자 베자에게서 배웠습니다.

그 후 네델란드로 돌아가 대학에서 가르쳤습니다.

칼빈과 알미니우스 사이에는 전혀 다른 신학이 존재합니다.

다섯 가지 중대한 교리에 대한 견해가 다릅니다.

 

칼빈

알미니우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다.

인간은 완전히 타락하지 않았고, 자유의지가
남아 있다(자율구원 가능)

무조건적 선택

예지 예정(믿을 것을 보고 선택했다)

- 조건 선택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믿는 자들만을 위한 죽음이다
- 제한속죄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 만인구원

저항할 수 없는 성령의 은혜

성령의 은혜는 인간이 저항할 수 있다

- 거부 가능/자유의지

성도는 견인되기에 구원의 실패는 없다

구원받는 사람도 잘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린다
- 실패의 가능성 존재

 

알미니우스의 신학은 어디서 문제가 발생했을까요?

원죄에 대한 이해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죄가 무엇인가에 대한 뚜렷한 이해가 없었기에 이런 신학이 나옵니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후손들은 부패는 물려받지만, 죄책은 전가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부패 자체가 죄 자체로 보지 않고 현상(결과)으로 보면서 질병이나 연약함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죄로 인한 정죄가 없으며, 인간의 본성이 약화된 정도로 판단합니다. 

이런 단계에서 그의 신학은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무조건적 선택은 있을 수 없고, 인간이 훗날 믿을지 안 믿을지 아신 하나님이

선택이나 유기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도 회심한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내하도록 끌고 가는 것에는(견인) 고민을 거듭하지만

견인하도록 하는 역사는 없다고 결정지으면서 구원의 상실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알미니우스 신학은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지만 마지막 문제 - 성도의 견인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회심 - 는

심도 깊게 연구되어야 합니다.

거듭난 사람 즉 중생한 사람은 모두 구원에 이르고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는가에 대해서

먼저 구약성경을 통해 확증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피하고 싶은 몇 가지 질문들을 해야 합니다.

 

 * 구약 성도들은 언제 거듭났는가?

 *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어떻게 거듭나는가?

 * 오늘날 신자의 어린 아이는 어떻게 거듭나는가?

 

또한 우리가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거듭남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올바른 신앙고백>이 기준이 됩니다.

 

성령이 성도가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 힘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거스렸고, 그 결과 성령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거스렸던 사람들이 거듭났는지 아닌지를 아는 것이 바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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