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에서 신약학을 가르치신 변종길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눈 것을 올립니다.
로마서 7장의 '고통당하는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답변입니다.
이전의 다른 견해들과 대조되는 관점으로 함께 나누는 것이 유익할 것 같습니다.
오은환 목사 질문) 고통 당하는 나는 누구일까요?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변종길 교수님 답변) - 제목은 제가 짧게 정리한 것이고, 나머지 내용들은 변교수님의 주장입니다.
1. 중생 이후의 바울이다
'율법'에 대비되는 '나'입니다.
사도 바울인데 율법 이전이나 이후에나 다 해당되는 바울이란 존재인데,
여기서는 물론 중생 이후의 바울입니다.
2. 율법과 나의 비교
14절을 잘 읽어 보십시오.
"율법은 신령하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 여기서 '율법'(ho nomos)와 '나'(ego)가 대비되고 있습니다.
율법은 신령하다(pneumatikos), 즉 영적이다,
곧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지만, 나는 육신적이다(sarkinos)는 것입니다.
율법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에 항상 신령합니다, 즉, 온전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신령하다'는 것은 율법의 항상 그러한 속성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비되는(de) '나'는 육신적이라서 연약하고 흠이 많아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합니다.
늘 죄 있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비단 회심 전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회심 후에도 그러합니다.
중생했지만 율법과 대비해서 보면 나는 약하고 죄 있고 육신적입니다.
지금 중생 후에는 신령하지만 중생 전에는 육신적이라는 게 아닙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항상 그러한 율법의 본질적 속성인 '신령함', '거룩함'에 비춰볼 때 '나'는
본질적으로 항상 '육신적'(연약하고 죄 있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생 후에도 우리의 본질적 모습은 '육신적'인 사실에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중생했다고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들어와 계신다고 우리가 죄 없는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고 나의 부패한 속성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칭의'를 '의화'로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소마)는 죽을 운명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습니다.
그래서 '사망의 몸'입니다.
우리가 중생했다고 해서 '사망의 몸'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 비로소 '신령한 몸', '썩지 아니할 몸',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육신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나이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다 대속해 주셔서 이런 육신의 연약함에 대해 다시는 형벌이 없고
저주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적인 모습을 가지고 살지만 의롭다 함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우리는 장애인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장애인,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장애인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 의로워진 죄인
우리는 의롭다 함 받은 죄인입니다.
실제 모습으로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라 칭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죄 있다고 정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셨으며 또 의롭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실제 내 모습을 보면 '육신적'입니다.
중생 후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에 대해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이미 우리의 육신의 연약함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어떻게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기 목숨을 죗값으로 주심으로 우리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음으로가 아닙니다.
성령 충만을 받음으로가 아닙니다.
경건한 삶을 삶으로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다 자기 자신의 노력에 의지하는 것이며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건주의, 청교도주의, 성령 충만 주장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들은 한편으로 경건한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이미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제가 쓴 논문이 있습니다. "로마서 7장에 나타난 바울의 갈등"(『개혁신학과 교회』 18호, 2005, pp.51-77).
이것이 저의 책 『로마서 연구』 (대구: 말씀사, 2017), pp.138-169에도 실려 있습니다.
...............
변교수님의 주장은 이전의 어떤 관점들과 다르게 보입니다.
율법의 역할이 모든 인간(중생 이전과 이후 포함)에게 절망을 심어준다는 견해입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율법은 차등이 없다는 것과 성령이 율법을 조명함과 조명하지 않음 역시
차이가 없다는 관점입니다.
또한 죄인과 의인이 차이점입니다.
인간은 죄를 짓기에 죄인이라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중생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을 '의로워진 죄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장애인'으로
호칭합니다.
로마서 7장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이해는 성경 전체의 흐름과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하여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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