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신앙서적

성경과 나의 생애 - 박윤선 박사 자서전

오은환 2022. 11. 1. 17:50

박윤선(1905-1988) 박사의 자서전은 본인이 직접 쓴 부분과 
이전에 썼던 글 가운데서 일부를 발췌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실질적으로 자서전 분량은 많지 않습니다. 

친구인 방지일 목사와 합신의 신학정론에 실린 글들이 후반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박윤선 박사는 신앙을 받아들이기 전 10년 동안 한학을 공부했습니다.

18세의 나이에 15세 되는 규수와 결혼했는데 얼굴도 보지 못하고

부모가 맺어준 짝과 혼인한 것입니다. 

 

집이 가난해서 학비를 조달하기 어려워 중학교 시절부터 일과 학업을
병행했습니다. 젖소 키우는 일, 우유 배달, 김매기, 화장실 청소, 과외까지
많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첫 아기를 출산할 때도 개학이 되어 집을 떠나야 했고, 1년 후 병에 걸렸지만

치료할 형편이 되지 못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아기도 심히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

자책감으로 언제나 마음이 무거웠다"(p.29)

 

박윤선 박사는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 때문인지 요한계시록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신성중학교 시절 길선주 목사가 와서 요한계시록 사경회를 했는데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내가 그의 계시록 강해를 들어본 결과는 왜 그런지 허전한 느낌이었고, 계시록에는

무엇인가 깊고 좋은 내용이 있을 터인데 강사 목사님께서 이 책의 깊은 뜻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p.30-31)

 

그러면서도 타인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립니다.
어느 누구도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몫을 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그의 그릇됨의 크기를 가늠하게 합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세우신 대 전도자였음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몫을 다 할 수 없었음도 안다"(p.31)

 

평양신학교 교수들의 역량도 평가합니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매우 인격적이고 진실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경을 깊이 해석하는 교수들이 거의 없었음을
아쉬워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기에 박윤선 박사는 성경연구에 매진합니다.

자신의 사명이 거기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나는 어느 때나 성경 주석 집필을 쉬지 않았다. 내 마음은 언제나 성경에 머물러 있었고,

내 머리는 성경 연구와 사색으로 골몰해 있었다. 때로는 펜을 들 수 없을 만큼 심적고통을

겪기도 하였지만 그런 때에도 집필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게 되었던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생각한다."(p.106)

 

"성경을 바로 깨닫고 그 깨달은 바 진리를 바로 전하려는 간절함 때문에 나의 마음은 

항상 성경에 머물러 있었고, 동시에 성경 주석 저술에 기쁨이 있었다. 

내가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아는 만큼 확신하고 있으며, 또 내가 그것을 

형제에게 나누어 주고자 하는 마음이 항상 불타고 있으므로 계속 붓을 들게 되었다."

(p.114)

 

그가 얼마나 성경을 사랑했는지 여러 곳에서 드러납니다.
진리에 대한 갈망과 나눔의 기쁨이 삶 전체에 나타납니다.

 

"밤중에 잠에서 깨어 고요히 성경 말씀을 묵상하다가 그 뜻이 깨달아지면 즉시 기록해 놓고

다시 잠을 자기도 하였다... 나에게 있어서 성경을 연구하고 그 뜻을 풀어 기록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다. 그러므로 다른 일을 하는 때에도 마음 속에는 속히 책상으로 돌아가

성경 주석을 쓰고 싶은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p.115-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