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복수)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계11:11)
두 증인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은 매우 특이한 사건입니다.
나사로는 죽은 후 나흘 만에 살아났습니다(요11:39).
썩은 냄새가 나는 몸에서 다시 살아남(회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증인이 다시 살아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두 증인을 교회라는 상징으로 보는 자들은 교회가 핍박으로부터 이겨냈다고 해석합니다.
두 증인을 두 사람의 선지자로(계11:10) 보는 자들은 두 종류의 해석을 합니다.
첫째는 두 증인이 부활했다는 관점과 둘째는 그 육체가 다시 살아남(회생)으로 생각합니다.
두 증인(복수) 속에 들어간 '생기'는 무엇일까요?
'생명의 영 혹은 생기'(퓨뉴마 조에스) 곧 하나님으로부터 나온(에크) 생기가 그들 안에(엔)
들어갔습니다(entered).
사람이 죽었을 때 영혼(퓨뉴마)이 육체로부터 분리됨에서 다시 살아날 때 어떤 표현을 할까요?
*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왕상17:22)
삼층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안았던 바울은 '생명'이 그에게 있다고 말합니다(행20:10).
생명으로 표현된 '프쉬케'는 '혼'이란 단어입니다.
다시 살아남으로는 부활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영혼과 육체의 분리가 죽음이라면, 죽은 자에게 혼이 들어옴이 회생입니다.
예수님을 제외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들에게 쓰이는 용어입니다.
예수님처럼 부활했다는 것은 육체가 '영의 몸'으로 변해야 합니다(고전15:44).
부활의 몸은 육체를 지닌 자들이 볼 수 없고(예수님처럼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불신자들은 부활 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두 증인이 스스로의 '발로 일어났다'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아직 부활에 이르지 않았기에 드러 누웠던 상태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 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고...(겔3:24)
두 증인이 죽을 때 떠났던 영(프뉴마)이 다시 돌아와서 그들에게 들어가서 다시 살아
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교회의 핍박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문자적으로 죽었던 두 선지자가 다시 살아나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것입니다.
구경하는 자들은 죽었던 두 증인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두 증인이 죽을 때 자신들이 사흘 반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을 예언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과 이방 국가 불신자들이 함께 이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두 증인이 다시 살아났을 때 그들이 크게 두려워 한 것은 두 증인의 예언이 성취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두 증인의 사역은 그들이 죽고 다시 살아남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바울이 예언한 '온 이스라엘'이 돌아옴이 성취된 것입니다(롬11:25-26).
* ...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계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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