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일곱째 대접 재앙으로 음녀 바벨론이 철저하게 심판을 받은 후(16:19), 이어지는
17-18장에서 음녀가 행한 악행들을 자세하게 묘사했습니다.
뒤에 나온다고 시간적으로 후에 일어날 일이라고 보면 큰 실수를 합니다.
21-22장의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의 도래는 재림 후 천년이 끝났을 때 실행되는
백보좌 심판 뒤에 일어날 일이 아닙니다.
재림 때 누리는 혼인잔치의 영광을 받는 성도들의 모습들과 상급들을 자세하게 드러낸 것으로
재림 때 있는 일을 묘사한 것입니다.
1. 새 예루살렘 성 자체가 신부인가?
장소나 건물은 신부가 되지 못합니다(9-10).
새 예루살렘 성의 아름다움은 혼인잔치를 하는 신부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사극이나 영화를
보면 신부가 등장하기 전에 결혼식이 열리는 식장이나 주변의 아름다움을 먼저 보여준 후
주인공인 신부의 자태를 드러냅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습니다(10-11).
예수님은 장차 재림할 때, 세 가지 영광 가운데 오신다고 말씀했습니다(눅9:26).
자신이 가진 영광(면류관들과 이름들 - 계19:12-13)과 아버지의 영광이신 새 예루살렘 성과
(눅9:26), 천사들의 영광(계19:14) 가운데 오십니다.
새 예루살렘 성이 모든 성도들을 상징한다는 주장은 천국을 없애버린 큰 악함입니다.
성도들이 가야 할 목적지를 없앤 것입니다.
구약 성도들이 바라보았던 천성을 무가치하게 만들었습니다(히11:16, 13:14).
새 예루살렘 성을 소개한 후 그 안에 있는 주인공 되는 신부가 등장합니다.
신부이신 성도들이 자기 영광(면류관)을 가지고 빛 가운데로 들어갑니다(24).
새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합니다.
신부의 또 다른 신분은 ‘땅의 왕들’입니다(24).
베드로가 말씀한 ‘왕 같은 제사장’이 가시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벧전2:9)
지상의 삶은 엄청난 가치를 지녔습니다.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은 아꼈으면 합니다.
바울 사도처럼 열심히 일한 후에 많은 면류관들을 보며 기뻐해야 합니다.
*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2:19)
2. 숫자에 대한 이해
새 예루살렘 성을 설명할 때 많은 숫자가 등장합니다.
12문, 12천사, 12지파(12), 12사도(14), 12,000스다디온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16),
144규빗의 성곽 높이(17)는 모두 상징일까요, 문자적인 숫자일까요?
규격이 뚜렷하니 상징으로 보려는 유혹이 따라옵니다만 하늘에 있는 수는 원형을 가리키므로
문자로 보아야 합니다. 원형을 반영한 지상의 수(성막)는 하늘의 원형을 반영하기에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새 예루살렘 성의 보석들(11, 18-21)
새 예루살렘 성을 구성하는 여러 보석들도 문자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하늘에는 풍성하지만 지상에는 그 맛만 보여주기에 희귀합니다.
우리가 보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름다움과 소중한 가치를 간직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영광 새 예루살렘 성(11)
하나님은 빛 가운데 거하십니다(요일1:5, 딤전6:16). 그 빛이 너무 커서 해와 달의 비침조차
희미한 등잔불처럼 됩니다(23, 22:5).
해와 달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전히 해와 달과 별들이 새 하늘과 새 땅 가운데서 그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큰 영광이신 새 예루살렘 성이 주의 재림 때 이 땅으로 내려옵니다.
그것을 보는 성도들은 기뻐하며 찬양을 올려드리지만 악인들은 두려워하며(계6:16) 통곡하게
됩니다(계1:7).
5. 하늘 성전이 보이지 않는 이유(27)
요한은 재림 후 새 예루살렘 성에서 하늘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직설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바로 성전이라 알려줍니다(27).
하늘 성전은 지상의 성전이 그 역할을 끝냈을 때 역시 동일하게 그 역할이 끝납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성전이 가리키는 부분도 그 실체는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입니다.
지상 예루살렘 성 안에 삼위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행7:47-51) 성도들 안에 계십니다
(행7:51). 바울과 사도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성도의 성령의 성전 됨을 구약 성경에서
인용한 것입니다(고전3:16, 고후6:16-하나님이 이르시되, 약4:5-하신 말씀을).
성자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제단), 그 결과 구약 성도들 안에 성령이 내주하며(성소),
이런 가운데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지성소).
지상의 성전은 우리 신앙의 기본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주는 귀한 그림입니다.
6. 지상 예루살렘 성의 존재 이유
지금도 예루살렘은 많은 분쟁이 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주요 성지의
역할을 합니다. 이슬람교는 창시자 마호메트(‘무함마드’는 아랍식 이름, 또 다른 보혜사)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승천했다고 주장하며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이슬람교의 3대 성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평화를 외치는 자들이 대안으로 예루살렘의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합니다만
이런 대안을 철저하게 반대해야 합니다. 지상의 예루살렘은 장차 올 새 예루살렘 성을
예표하고 있으니 그 가치가 엄청납니다.
만일 지상 예루살렘의 이름이 없어지면 우리 신앙은 목적지를 상실한 것처럼 큰 손실이
일어납니다. 예루살렘 성이 소중하듯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 이스라엘(유대인)의
존재 이유도 귀합니다.
열방의 악인들은 이런 하나님의 귀한 계획을 지우려 합니다(시83:3-5,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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