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경을 연구하면서 느낀 점은 이렇습니다.
누구든 자신이 아는 범위 안에서만 글을 쓰려 한다는 점입니다.
설교나 논문, 출판, 강연...
성경을 가지고 주장하는 것은 항상 자신의 범주 안에 있는 것들입니다.
신학자들은 구약의 성령임재를 정말 몰랐을까요?
아니면 생각하기 싫어서 방치했을까요?
신학자들은 구약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없었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생각하기 싫거나 몰라서 방치했을까요?
양심을 가진 자라면 이토록 중요한 문제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이 두렵지 않았을까요?
구약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통치)를 다루지 않으려는 성향이 신학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백성들 가운데 왕이 되셨고, 그들을 통치했다라는 말에 민감합니다.
마치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것처럼 반응합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여러 번 선포합니다.
왕되신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통치하셨을까요?
무천년이나 역사적 전천년 혹은 세대주의 주장처럼, 하나님이 <사람들 - 제사장, 선지자, 왕>을 통해서 다스렸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없이 이런 주장들을 받아들였고, 지금까지 관습인 것 처럼 수긍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각 사람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였습니다.
심지어 남편도 아내를 다스리라는 말은 없습니다.
부모 역시 자녀를 마음대로 다스리고 조절할 수 있는 권세를 주지 않았습니다.
신약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 예수님>께서 그가 보내신 <성령을 통해서> 그의 자녀된 <성도들을 통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구약의 통치 스타일은 신약과 다른 것일까요? 같은 것일까요?
모두 같습니다.
이런 진리에 무지해서 많은 문제들을 <난제 구문>으로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구원의 방법도 신구약 모두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방법도 신구약 모두 동일합니다.
신구약 모두 성도들에게 성령이 내주합니다.
지금껏 성경의 3/4을 차지하는 구약을 엉뚱하게 해석하고 설교해 왔습니다.
구약의 행복한 백성들을 성령도 없고, 하나님의 통치도 없는 비참한 백성들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명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확신이 없는 설교, 강연, 성경공부, 나눔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게 만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배워 <온전한 사람들 - 엡4:12-13>로 세워지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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