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은 상태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2:25)
타락한 이후에 성령이 떠나감과 사탄의 죄의 종이 된 이후로 부끄러움이 크게 부각됩니다.
벌거벗음이 어떻게 부끄러움이 되며, 그것이 왜 타락한 죄의 종의 모습의 상징이 되었을까요?
* ...내가 벗었음으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10)
그런데 하나님의 답변은 더욱 당황스럽게 합니다.
벌거벗음을 누가 알려주었느냐고 묻습니다.
마치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을 알았다는 뉘앙스입니다.
*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창3:11)
하나님은 이런 수치를 느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입혀 주어 죄의 수치를 가려줍니다.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1)
가죽옷을 입혀 주어서 수치를 가려주는 것이 구속사의 근원이 되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섣불리 구속사로 연결하는 것은 과도한 추측이 될 수 있습니다.
벌거벗음이 수치가 되는 이유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이후에도
인간은 다시 벌거벗음의 상태로 다니지 않은 것을 볼 때, 이 문제에 대한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벌거벗음과 죄의 상관성에 대한 반응은 신악성경에서도 나타납니다.
벌거벗음이 일종의 인간의 죄성의 상태를 드러내주기 때문입니다.
*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후5:3)
* ...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벌거벗은 것이 일종의 장애로 나타납니다.
충만하고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 결함이 있는 묘사입니다.
그렇다면 타락전 성령의 충만한 상태와 벌거벗음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어떤 관계이기에 전혀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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