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를 읽다보면 좋은 말들이 많습니다.
간디 역시 복음서를 읽으면서 세상 어디서도 보기 힘든 훌륭한 도덕이라 칭찬합니다.
신약의 황금률(golden rule)이라 불리는 구절입니다.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한 마디로 말하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대접 대신 사랑이란 단어를 넣어도 훌륭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으로, 율법과 선지자가 가르친 중심이 됩니다.
당시의 청중들에게 이런 말씀이 어떻게 들렸을까요?
오늘날 청중들은 또 어떻게 들어야 할까요?
무조건 지켜야 가능한 말씀일까요?
아니면 재림 이후 혹은 천년왕국에 가서나 지킬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가르침은 무거운 짐으로 끝나버립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대접하고 사랑하라고 희생을 요구합니다.
당시의 청중들 역시 그런 힘겨움을 느꼈을까요?
사랑할 힘이 없는데 사랑하라면 얼마나 잔인한 하나님입니까?
어떤 사람들처럼 천년왕국에서나 지켜라 말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허망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사랑을 행할 힘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오순절 이후에나 지킬 수 있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순절 이전 청중들에게 성령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힘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무거운 짐이로 만들고, 버리고 싶은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율법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지킬 사랑의 마음도 주셨습니다.
율법이나 사랑의 마음은 모두 그리스도의 구속을 근거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큰 율법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사실 엄청난 분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서나 구약을 불행한 책으로 만들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독재자처럼 만들기도 합니다.
연약한 자들을 억압하거나 괴롭게 한다고 느끼게 가르치기도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자유하게 해야 합니다.
사랑의 힘을 주셨기에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 입니다.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30:6)
예수님의 복음서 말씀은 구약과 전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동일선상에서 말씀한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구속과 성령의 내주함을 당연히 알고 있기에
그렇게 말씀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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