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잘못 사용하는 <자유의지>

오은환 2015. 12. 18. 01:41

자유의지란 무기로 칼빈을 공격하는 것이 타당할까요?

선하게 창조된 아담의 자유의지와 범죄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무지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1. 범죄하기 이전의 아담의 자유의지

 

타락전 아담의 자유의지는 어떤 상태였을까요?

아담은 그리스도의 은총에 근거해서 성령이 충만한 상태로 창조되었습니다(엡1:4).

그러므로 아담의 자유의지는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조명과 도우심으로 행하는 자유의지입니다.

*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2. 범죄로 인한 전적타락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아담 개인 뿐만 아니라 인류전체는 전적타락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칼빈이 얼마나 자세하게 설명했는지는 모르지만 전적타락은 아담에게서와 그 후손에게서

범죄로 인하여 <성령이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떠나갔다는 말은 또 다른 의미로 그리스도의 은총에서 떠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상태에서 나온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엇일까요?

타락전 성령의 조명아래서 나온 자유의지와는 달리 사탄이 이끄는대로의 자유의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타락한 자유의지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다고 단정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타락한 상태의 자유의지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것도 의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사탄의 조명으로 나온 악한 자유의지에 불과합니다. 

 * ...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 ... 너희가 래 죄의 종 이더니 ...(롬6:17) 

 

3. 회복된 자유의지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는 죄가운데서 태어납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원죄란 다름아닌 그리스도 밖(갈2:15, 엡2:12)에 있고 그 결과 성령이 없는 상태로 태어남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은총을 경험한 백부장이나 이디오피아 내시, 십자가에 달린 강도, 나사로 ...

이런 사람들이 복음 밖에서 자유의지로 예수님께 나아갔을까요?

이런 주장은 구약과 복음서를 제대로 보지 못한 산물이란 것을 아셔야 합니다. 

 

구약성도들과 복음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과 사마리아 사람들(요4:19-25, 행8:4-17)은 이미 회복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구약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서 회복된 자유의지를 가졌습니다. 

즉 성령 안에서 주어진 자유의지입니다. 

성령의 내주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이것을 복음 밖에 있는 불신자들의 자유의지로 혼동합니다. 

 

불신자들의 자유의지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인식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습니다.  

 

4. 중립적 자유의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자유의지란 하나님도 죄의 지배도 아닌 중립지대라고 보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지 않고, 사탄의 영향도 배제된 인간만이 가진 생각과 선택을

자유의지로 보려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중립지대 자유의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탄이 이런 중립적 자유의지를 선호할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떠나게 하며 무지함 속에서 죄의 종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5. 복음을 통한 자유의지

 

결국 구약성경과 복음서에서 제대로 된 복음(구속과 성령내주)을 보지 못하기에

엉뚱한(불신자)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모순에 직면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계속되는 것은 복음을 알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