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과 같은 의인도 몸이 아프니 초라하게 보입니다.
바울같은 뜨거운 사람도 자신의 몸에 지닌 <사탄의 사자>는 복음을 전하는데 버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디모데 같이 착한 사람도 자주 발생하는 병으로 바울의 근심을 유발시킵니다.
이틀간 다리가 아파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몸과 정신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바쁘게 돌아가던 패턴이 누워있거나 의자에 앉자만 있어야 할 때 적응되지 못하고 힘겨워 했습니다.
그 동안 왜 사람들은 저렇게 잘 아플까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는데 많은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공감은 지식적으로만 생기지 않게 보입니다.
헨리 나우엔이나 필립 얀시 같은 거장들도 삶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감능력이 발달되었습니다.
바울의 말처럼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자들과 함게 웃는 공동체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이 부어주시는 공감능력이 있습니다.
사랑, 소망, 믿음 이 모든 것들이 위로부터 온 성령의 선물입니다.
이틀간의 아픔을 통해 나 중심의 삶을 잠시 멈추고 옆을 돌아보는 시간이 됩니다.
질병 앞에서 무기력하게 보이지만 그곳에서도 교훈이 있고,
다시금 일어서야 하는 힘을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