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도에 정리했던 글인데 같이 보았으면 합니다.
저자 서철원 교수님은 한국신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요즘 복음속에 나타난 율법에 관심이 많이 갑니다.
복음서 설교를 하면서 예수님은 율법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바울과 사도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전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서 교수님의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루터가 율법을 구원의 서정의 첫 단계로 넣어서, 그것이 오늘날 우리 신자들에게까지 적용하는 것을
예로 들어 시작합니다.
이러한 시작은 율법을 통해 구원받을 수도 있지만, 복음을 통해 받는 것이 훨씬 쉽고, 유익하다는 결론에
이를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합니다.
루터 자신은 율법에 의하여 자신을 정죄한 자가 복음을 통해 의를 입게 된다고 하면서 율법의 역할이 지금도
구원의 서정 가운데 계속된다는 견해입니다.
저자 서 교수님은 율법이란 구원의 서정에서 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사에서 율법은 복음이
오는 길을 재촉하는 역할, 또 복음이 오기까지 몽학선생으로서 한시적 역할을 강조합니다.
이제 우리 신자들에게 율법은 속죄의 역할로는 종지부를 찍고, 남은 것은 생활규범으로서의 율법을
지키는 것만 남았다고 합니다.
신약의 신자들은 이런 생활 규범으로서의 율법을 잘 지켜야 하고, 잘 지킬 수 있는 동인은 바로
성령의 역사임을 강조합니다.
문제들이 좀 있습니다.
서 교수님은 구약 성도들에 대해서 인색한 평가를 합니다.
* 언약 백성들의 생활 법칙으로서 율법은 육을 따라 사는 옛 언약 백성들에게서 도저히
지켜질 수 없었다(p.11) - 구약성도들은 성령을 따라 살지 못했다로 생각합니다.
* 구약성도들이 율법을 지키는 일은 불가능하므로 그로 인하여 그들은 절망감에 휩싸인다.
그리하여 그들은 율법의 완성자를 고대하는 길 밖에 없다. 율법이 해야 할 일은 백성들을
이 절망의 상황에로 이끌어 율법의 완성자 곧 그리스도에게로 눈을 들게 하는 것이다(p.40)
- 구약성도들이 절망속에 살았는가요?
* 옛 언약 백성들은 아무리 율법을 지키려해도 지킬 수 없었다(p.105)
......위의 문제점은 바로 성령이다. 구약 성도들은 성령이 함께 하지 않아서 율법을 준수할 수 없었고,
반대로 신약의 성도들은 성령이 함께 함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고, 또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서교수님의 문제점들은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구약성도들의 구원은 개인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인가? 개인적인 노력(자기 의)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는 참으로 어려운
상황으로 내 몰리는 것이다. 시편119편은 율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이다. 시인은 누군가(성령)의
조명으로 율법에 대한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기를 기도한다. 니고데모는 선생으로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알지 못하기에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다.
구약성도들이 가진 칭의나 양자됨, 예배...(롬9:4)은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만일 이런 노력으로
하나님게 나아간다면 오늘날 불신자들도 성경책 한권과 자기의로 구원의 가능성을 있다고 선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넘치리라(고후3:9)
*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
* 그러면 거기에(안식)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히4:6)
* 그들과(구약성도들)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히4:2)
*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이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계10:7)
...구약 성도들이 받은 율법은 그들에게 복음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척 기쁜 소식이다.
이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죄사함이 일어나며, 양자됨과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거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율법을 적용하는 것에 있어서 아리송한 태도이다. 예를 들어 율법에서 이혼에 관한 법중에
음란한 이유가 있으면 유일한 이혼사유가 된다는 것도 폐지되어야 한다고 한다.
예수님이 이룬 율법의 완성은 창조 때로 되돌아가서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고, 사람이 나눌수 없다는 것이
율법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음란한 이유로 이혼하는 것도 편법이 된다(p.138).
여기서 생각할 것은 율법도 죄로 인하여 오염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율법도 다시 회복되어야 할 대상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고 봅니다. 우리의 설교 역시 이런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런 문제들로 인하여 씨름을 해야 확실한 말씀을 선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설교가 대부분 도덕적, 종교적인 열심으로 결론이 나는 것은 구약성도들에게 임한 성령님을 알지
못하거나 적용하지 않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결론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 내며, 원래의 뜻과는 정반대의 메시지가 되기 쉽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같이 고민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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