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신학자들은 복음서와 바울서신이 전혀 다른 관점에서 쓰여졌다고 주장합니다.
특별히 구원에 관하여 마치 두 가지 구원론이 존재하듯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행위를 무척 강조해서 행하지 않는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바울은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한 것처럼 견해를 펼칩니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두 가지 다 옳은 것인지 찾아 보았으면 합니다.
*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눅6:46-47)
비슷한 구절을 찾아봅니다.
왜 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 가운데 떨어졌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 그러므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이들은 주의 이름으로 온갖 것들을 행했습니다만 주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배척합니다.
어떤 자들은 주님의 말씀 수준이 너무 높아서 오순절 이후나 천년왕국에서 가서야 지킬 수 있다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르치고 말씀하시는 것을 지금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예수님이 풀어 주신 말씀을 듣고 행한다는 것이 쉬울까요?
산상수훈이나 기타 가르침들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나
이웃을 내 몸처럼 최고로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행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하라고 알려줍니다.
기도해서 일할 힘을 달라고 간청하라는 것입니다.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 힘을 공급하십니다.
그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며, 구제하며, 금식하며, 사랑하라는 것입니다(롬5:5, 신30:6).
그 결과 어떤 고백이 따릅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셨으니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림이 합당하며 겸비하게 됩니다.
*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행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17:10)
열심히 일했지만 자신을 무익한 종이라 표현한 것은 자신 안에 계신 성령의 공급하시는 힘을 받아
열심을 내어 수고했던 자들의 고백입니다(골1:29).
예수님이 명령한 행함은 사람 스스로의 힘을 짜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이 주시는 힘을 따라 수고하라는 지혜로운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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