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죽은 후 부활하기까지를 <중간상태>로 부릅니다.
이 때 성도들은 몸과 영혼이 분리되었고,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과 함께 있습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 모두 죽은 성도들이 그런 상태로 존재합니다.
성도들의 영혼이 거하는 곳은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도성이라고도 합니다.
*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히12:22-23)
성도들의 영혼을 의인의 영으로 부릅니다.
성도들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먼저 알 것은 어떤 성도도 부활의 몸을 입고 있지 않습니다.
이 땅에 살았던 예수님 이외에는 부활의 몸이 아닙니다.
부활의 몸이 아니라는 것은 중간상태에서 어떤 특별한 일을 행하지 않고 쉼을 누림을 의미합니다.
육 일 창조후 제 칠 일에 쉬셨던 것처럼 성도들 역시 쉼을 얻습니다.
*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히4:11)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 나타났던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부활의 몸을 입고 온 것일까요?
예수님이 계신 변화산에 와서 장차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할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눅9:31).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하면서 아브라함이 낙원을 관리하는 자처럼 표현합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를 묘사합니다(눅16:22).
현재 아브라함이 부활했을까요?
모두 아닙니다.
중간상태에 있는 성도들에 대해 요한계시록은 매우 절제된 묘사를 합니다.
순교자든 평안이 죽었던 성도들이든 모두 지상에 있는 성도들이 그곳에 오기를 기다립니다.
*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계6:9-10)
*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22:17)
순교자들의 간절한 청원에 대해서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중간상태에 있는 순교자들에게 역시 <쉬라>고 명합니다(계6:11).
주님이 오셔서 갚아 주실 때까지 <잠시 쉬라>고 구체적인 명령을 합니다.
중간상태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천주교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마리아나 성인들이 지상의 성도들을 향해 중보자로서 일한다는 개념은 매우 위험합니다.
중간상태에 있는 마리아가 성도들의 기도를 아들 예수님께 말하면 잘 들어주거나, 어쩔 수 없이 들어준다는
관념은 기독교를 이상한 종교로 만듭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으며,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어느 곳에서도 마리아가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 이외의 어떤 중보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성인들(신구약의 위대하다고 판단된 성도들) 역시 어떤 활동도 묘사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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