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 교회들은 율법의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된다는 말에 속고 말았습니다.
순회 유대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흔들린 것입니다(행15:1).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
갈라디아 교회가 바울의 가르침을 벗어나 잘못된 가르침을 따른 것입니다.
반복해서 그런 가르침은 잘못되었다고 정죄합니다.
성령받음도 율법 행위에서 기인하지 않았습니다.
*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갈3:5)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이나 율법 행위에 속한 자나 모두 동일하게 다룰 때가 있습니다.
모두 <저주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죄의 삯은 사망이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갈3:10)
율법 행위를 또 다른 말로 율법을 행하는 자로 표현합니다.
이 말은 율법(양심)에서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옛 사람(거듭나지 않은 상태)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3:12)
결론적으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나(갈4:4),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모두
이방인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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