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신학이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가 대상파악을 잘못하기 때문입니다.
서신서의 표현 - 나, 너희, 우리 - 은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대충하는 해석은 전체를 흐릿하게 만들고 잘못된 결론에 도달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는 율법 문제를 많이 다룹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된다는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서 혼란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런 율법에 대한 논쟁을 잘못 이해함으로 구약성경을 엉뚱하게
해석하는 일을 자행합니다.
*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
먼저 생각할 것은 예수님은 율법 아래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아들의 신분을 주십니다.
이 일은 먼저 구약시대 성도들에게 이루어졌습니다(롬9:4).
간단하게 말하면 율법 아래에 나셨다는 의미는 율법이 요구하는 책임을 지셨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선악간의 기준으로 거기서 벗어남은 곧 죽음을 요구합니다(롬6:23).
죄의 삯인 사망 아래에 있던 자들 곧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 가운데 일부를 아들로 삼아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요19:30).
갈라디아서를 통해 본 율법 아래에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직 거듭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갈4:21)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서 진리를 벗어나서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에게 경고합니다.
그 상태가 어떤 것인지 보여줍니다.
*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4:29)
갈라디아서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래서 <너희>라는 표현은 이방인의 신분을 드러냅니다.
또한 <우리>는 이방인 가운데서 <성도>가 된 무리를 칭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한꺼번에 묶어서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문맥적으로 이런 이해가 없이는 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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