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만남이 예루살렘이 아닌 이방 안디옥에서 이루어집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열심을 내어 가르쳤던 안디옥 교회에 베드로가 방문한 것입니다.
옛날이라서 통신시설이 빈약했기에 누군가가 오고 떠나는 일을 쉽게 알기는 어려웠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베드로와 유대인들이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이스라엘 땅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거룩한 백성과 부정한 백성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식사법만 차이가 난 것이 아니라 율법에 규정된 여러 가지 법들이 두 부류를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렵게 만듭니다.
문제는 갑작스럽게 본토 유대인들이 도착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크게 놀라 그 자리에서 일어났고 피했습니다.
같이 있던 유대인들도 자리를 피했고 바나바마저 판단력을 상실한 채 도망쳤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으로 인해 몹시 분노했습니다.
어찌보면 조금 이해할 수도 있었는데 바울은 단호합니다.
*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갈2:15)
<우리>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은 의인이고 이방인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두 부류가 함께 식사할 수 없는 상태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구절들은 이스라엘이 의롭게 된 것이 율법의 규정에 따라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에 식사 자리를 피하는 것은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음을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된 것 역시 믿음으로
된 것이기에 율법이 이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
구약시대에는 거룩한 백성의 표로서 이것저것 의식들이 주어졌습니다.
부정한 것들과 다름을 보여주는 정체성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한시적인 것들입니다.
이방인들이 부정한 상태에 있었기에 구별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이방인들을 깨끗케 하심으로 더 이상 부정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오랜 관습으로 몸이 말을 안 들었지만 환상을 통해 이해합니다.
*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어 이르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행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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