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바울이 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오은환 2021. 5. 10. 23:46

인문학은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누구인지 근원을 캐는 작업은 아직도 힘들게 보입니다.

신학 역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지만

형상과 모양이 무엇인지 결론을 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형상과 모양을 같은 의미로 보지만, 천주교는 전혀 다르게 봅니다.

이 해석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인간의 상태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것에서

신학적인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천주교는 인간이 타락의 결과 초자연적인 능력은 상실했지만 이성적인 능력으로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성경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나 모양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형상과 모양을 구분한듯 하면서도 구분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세밀함을 제대로 분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형상과 모양의 미묘함을 드러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전11:7)

 

왜 바울은 창세기를 인용해서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모양의 자리에 영광을 집어넣었을까요?

왜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혹은 영광이란 말을 넣지 않았을까요?

 

어떤 자유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어머니'로 부르며 기도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이단이 있습니다.

모두 창조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해프닝이며 사탄의 간사함에 속은 것입니다.

 

형상(첼렘)은 외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모양(데무트)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게 보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후서에서도 동일한 표현을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장차 주의 영광과 형상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통해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하면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모양)을

보게 된다는 소망입니다.

 

*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바울 사도가 사용하는 '형상'은 대부분이 외적 모습을 나타냅니다.

부활장(고전15:49)의 언급도 그렇습니다.

또 다른 곳 역시 형상과 영광을 동시에 언급합니다(고후4:4).

 

그러나 어떤 곳은 형상이란 단어 속에 '영광'도 포함된듯한 느낌을 줍니다(갈4:19, 골1:15).

또 다른 곳은 형상과 더불어 모양의 자리에 내적인 요소들을 배치합니다.

*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3:10)

 

이곳 역시 형상은 하나님의 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모양(영광)의 자리에 내적인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면 영광이란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사야 선지자가 소명을 받을 때 하늘 보좌에서 드려지는 찬송을 보고 듣습니다.

거룩이란 단어와 영광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6:3)

 

천사들이 고백한 거룩은 그들이 온 땅에 충만한 영광을 보며 나온 고백입니다. 

성경에 거룩이란 단어가 처음 나온 곳은 바로 안식일 준수 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충만하게 나타남으로 그것을 기억하며

바라보는 모든 자들은 거룩함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2:3)

 

바울 사도를 통해 본 하나님의 형상(외적 모습)과 모양(영광)에 대한 접근은

인간을 더 확실하게 보게 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일까 할 때 우리가 외적으로 그분을 닮았다는 것을 잊어버린다면

가장 귀한 부분을 놓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거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 때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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