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에 관한 이야기는 수백 번을 해도 부족함이 없고 안전합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구원론이 거의 구원파 쪽에 가깝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구원론이란 어떤 것일까요?
구원에 관련된 모든 구절들을 넣어도 일관되고 바르게 설명되는 것이
올바른 구원관입니다.
1. 언약
구원이란 용어는 언약에서 시작됩니다.
삼위 하나님이 맺은 언약에서 인간을 향한 구원의 계획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성자를 통하여 사람들을 자녀 삼기로 작정했습니다.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2. 언약을 맺음으로 태동된 관계
하나님과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을 맺음으로 어떤 효력이 발생할까요?
언약을 맺기 전과 후의 관계는 전혀 다릅니다.
1) 왕과 백성
2) 아버지와 아들
3) 신랑과 신부
4) 주인과 종
3. 언약의 유효 기간
언약의 효력은 맺음과 동시에 발생합니다.
그리고 언약이 지켜질 때 계속해서 효력은 유지됩니다.
언약이 깨어지면 그 효력이 중지되기에 다시 회복시킬 도구가 필요합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이런 관계를 무시하게 된 구원관은 왜 발생한 것일까요?
아마도 2번(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을 오해한 이유가 큽니다.
지상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잘못된 생각들이 주입되었고, 무조건적 구원론이 득세한 것입니다.
나머지 관계는 어찌될까요?
1) 백성이 왕을 거부할 수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8:7)
2) 신랑과 신부 관계가 파탄날 수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그 관계가 깨어지면 음녀라 부릅니다.
신부(성도)가 신랑(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따라 간 것을 음녀라고 부릅니다.
음녀의 요건을 충족하는 별거나 이혼은 항상 일어날 수 있습니다.
* 그는(음녀)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잠2:17)
3) 주인과 종의 관계가 깨어질 수 있습니까? 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게으른 종은 주인의 집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 (악한 종을)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24:51)
4)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영원할까요?
관계는 깨어질 수도 있고, 다시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➀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노라(렘3:19)
➁ 그들이 울며 돌아오리니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할 때에...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렘31:9)
➂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말1:6)
➃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말4:6)
4. 언약의 깨어짐과 회복
구원에 관한 언약은 깨어질 수도 있고, 다시 회복되는 방법도 제시되어 있습니다.
크게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언약의 효력은 유지되며, 반대로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언약의 효력은 중지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말은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이며, 반대로 그리스도 밖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을 떠나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날마다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을 맺은 후 성령을 보내어 성도들 안에 내주하게 했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삶을 살아가며, 사랑하며(신30:6, 롬5:5), 조명하며(시119편),
깨닫게 하며(시119편),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심지어 회개하는 것도 내주하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어나며,
그 결과 언약이 회복되게 하십니다.
5. 언약을 지키는 삶
사람이 매순간 언약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와 조명을 받아 선택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성령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신30:6, 롬5:5) 희생과 섬김과 구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죄를 짓거나 허물이 드러날 때도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6. 구원의 과정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단순히 언약만 맺은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을 지키며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옛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죄로 인한 옛 사람은 죽고, 예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을 경험케 하셨습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없던 삶에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죄를 깨끗이 씻어 주었고, 그 결과 성령이 내주하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상태(연합)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죄를 짓지만 다시 온 몸을 씻을 필요가 없이 더러운 부분만 씻어내면 됩니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요13:10)
많은 신학자들이 성화를 구원의 과정에서 누락시켰습니다.
성화는 단지 구원받은 자들의 삶을 묘사한 것이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한 번 의롭게 된 자들은(칭의) 성화와 무관하게 구원에 이른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구원관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성화를 잘못 이해해서 사람의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성화는 사람의 행위로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화는 우리 안에 내주하는 성령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결코 사람의 힘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이 곧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곧 성령 안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여 멀리 하는 것은 하나님과 화목(평)을 누리는 것을 어색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7. 결론
그러므로 구원은 언약과 관련해서 크게 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느 작은 것에 집착해서 큰 뜻을 망각하면 미혹당하기 쉽습니다.
오늘날 구원파들의 구원관이 많은 교회에 파고들었습니다.
성화 없는 구원 곧 열매 없는 구원을 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크게 벗어난 주장입니다.
성령의 내주와 인도하심이 없는 구원관으로 마땅히 배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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