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복음서

비유를 통한 복음서와 구약 이해

오은환 2022. 8. 10. 19:48

비유를 통한 복음서와 구약 이해(막4:3-9)

 

https://youtu.be/kr3M8pyB6p0

- 바다예배 설교 - 

 

예수님이 청중들에게 가르쳐 준 말씀들은 결코 쉬운 내용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많이 들었지만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설명 좀 해달라고 종종 부탁합니다.

 

★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막4:10)

 

왜 이 비유들이 어려웠을까요?

이해가 안 되니까 어렵습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은 기존의 생각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반대로 말을 하니까 난감한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다보면 속이 터질 때가 많습니다.

왜 같은 언어를 쓰는데 이렇게 못 알아들을까요?

잘못된 가르침을 받았거나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여러 비유들 가운데 첫 번째 등장합니다.

사실 모든 비유는 어떤 주제를 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마태복음은 <천국>이라 표현했는데 동일한 의미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 이 땅에서와 장차 주님이 재림하실 때 새롭게 된 땅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물론 그 나라를 지금 이곳에서 맛을 보고 있기도 합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자격을 정하고 있기에 굉장한 관심을

줍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영생을 얻고 싶고, 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4개의 밭을 보여줍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밭입니다.

더 간단하게 보면 둘로 볼 수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밭 세 곳과 열매를 잘 맺는 곳 하나입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오직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만이 열매를 맺습니다.

알곡이 되지 못하면 모두 불에 던져집니다.

즉 구원에 이르지 못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 비유를 들었던 청중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성도들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지 못할 자들이 있다니...

곰곰이 들어보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소수의 사람들만 들어간다는 소리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받은 충격은 복음서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들은 곧바로 알아차렸습니다.

*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은 자가 적으니이까(눅13:23)

 

예수님의 대답도 구원받은 자들이 매우 적다고 하십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 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13:24)

 

오늘 예수님이 우리들 곁에 와서 이런 말씀을 전하면 쉽게 이해하겠습니까?

만일 이렇게 말한다면 우리도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엄청난 충격이 됩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매우 어려우면서도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첫 관문이 됩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알지 못하며, 복음서 자체도 이해가 어렵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막4:13)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에 자연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줄 알았다가 충격에 빠진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교회에 다닌다고 다 천국 간줄 알았다가 아니란 말에 받은 충격과 같습니다.

 

그러면 어떤 열매들을 맺어야 할까요?우리가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니 점점 어려워집니다.

신학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복음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복음서처럼 어려운 곳이 없다”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어떤 열매를 맺으라 했을까요?

다른 곳에서도 계속해서 열매 없이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

*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마7:18)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왜 예수님은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이미 청중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생략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세한 것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들이 정확하게 무슨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 설명을 해줍니다.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5:22-23)

 

예수님이 유대 청중들에게 요구한 열매 역시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들 안에 계시는 성령을 따라

순종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곧 그들이 예수 안에 있음을 증거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고 묵상하다보면 바울 서신서와는 달리 많은 부분들이 생략됨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복음서에는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이 없을까요?

왜 복음서에는 의롭게 되어야 한다는 구절도 없을까요?

왜 복음서에는 성령의 내주와 인도하심에 순종하라는 구절도 없을까요?

왜 복음서에는 거듭나라는 말씀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왜 복음서에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정의도 내리지 않는 것일까요?

 

정답은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생략한 것입니다.

또한 유대 청중들은 이미 하나님을 믿고, 메시아의 공로를 힘입어 자녀가 되었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복음서와 그 안에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구약 따로, 신약 따로 가면 큰 혼란이 오며, 일관성이 없게 됩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엄하신 분으로 묘사되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이 가득한 분으로도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선박에서 예배를 드리며 전도하는 우리 선원 형제, 자매 여러분,

잠깐 동안 짤막하게 구약을 정리해 보시면 큰 도움이 됩니다.

 

첫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우리 성도들을 구속하려고 계획하셨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곧 핏값을 지불하고 사셨습니다.

사람들과 상의하지 않으시고, 오직 삼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실행하셨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에덴동산에서 범죄하기 전의 아담과 하와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 됨의

복에 참여함을 받은 것입니다.

 

둘째, 범죄한 아담과 그 후손들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요?

구약시대라고 신약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인 구약성도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들으면서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받았습니다.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었습니까?

바울은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 그들이 믿었던 것은 바로 죄 사함을 믿었다고 고백합니다(롬4:3-8).

자신들의 의가 아닌 메시아를 통해 주실 죄 사함을 미리 경험한 것입니다.

비록 예표이지만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예표 곧 제물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로 인한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가 구약 성도들 안에 거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보낸 성령 또한 그들 안에 거했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도들은 말씀과 함께 성령의 조명을 받아 행복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성령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맺혔습니다.

바울은 이런 구약성도들을 가리켜 제물 되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었고, 한 몸에 참여하였다고 알려줍니다.

*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 들이 아니냐(고전10:18)

 

왜 하나님이 신약이나 구약 성도들이 우상 숭배하는 것을 싫어하며 엄히 책망하는지 아실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한 몸 곧 연합된 몸을 지녔기에 우상에게 정신이 팔리면 음행함이 됩니다.

즉 신부가 신랑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아가는 간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도들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렸기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었고, 성령의 내주와 인도하심을 받았기에 거듭난 자들이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런 배경으로 복음서를 읽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 성도들을 볼 때 우리와 똑같은 그리스도인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 구약성도들이나 모두 동일한 정체성을 지녔습니다.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5:13)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5:14)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무엇을 말하는지 정리하고자 합니다.

유대인들 곧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들어갈 자격에 대해 별 의심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자 약속을 받은 선민인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 자부심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성령이 내주하며 조명하는 엄청난 특권을 받은 자임을 자주 잊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성령의 사람으로서 결단과 희생을 망각했습니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섬기지 않고 멸시하다가 심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저절로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같은 비유를 설명하면서 성령의 열매는 인내로 결실되어진다고 알려줍니다.

*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

 

말씀과 성령은 늘 함께 하며, 또 함께 해야만 힘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말씀과 성령 역시 그렇습니다.

또한 우리 성도들도 동일하게 성령의 힘주심을 따라 인내로 결실을 맺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이 현재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이며, 그런 자들이 장차 주의 재림으로 임할 가시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영원한 소망을 향해 달려가면서 또한 현재적으로 내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일하심과

함께 해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늘 느끼며, 소유하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의 가르침 역시 그렇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5장 3-10절에 나오는 팔복도 동일한 구조에서 나왔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온유한 자, 애통하는 자, 화평케 하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의 조건은

예수 안에 있는 자만의 성품입니다.

곧 성령이 내주한 자가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천국과 그 안에 모든 것을 유업으로 주겠다는 것입니다.

 

비유를 통해 복음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비유든지 그 주제는 항상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백성의 자격을 논한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결단을 위해 감추어진 보화와 진주 비유가 등장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이 끝나면 심판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유가 바로 그물 비유입니다.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구약 성도들이 어떻게 거듭났는지에 대한 성경적 답변을 논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선원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가 받은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죄 사함 그리고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인한 거듭남은

거저 주셨기에 별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가치가 커서 은혜로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은 단지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다시 태어난 자들입니다.

이전에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거룩한 성령이 내주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성도가 되었으면 그에 합당한 삶의 열매들 곧 성령의 열매들을 맺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이 삶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그러나 그런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의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희생도 행복이 될 수 있는 것은 모두 주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

 

말씀을 알수록, 더 깊게 알수록 인생이 풍요로워집니다.

모든 선원들에게, 우리 항만 선교사들에게, 또 바다와 관련하여 동역자 된 우리 모든 사역자들에게

항상 넘치는 말씀의 충만함과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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