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자신이 주는 것과
예수님이 주는 세례를 구분했습니다.
자신이 주는 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로서 물세례라 명하고,
자신 뒤에 오는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 구분합니다.
*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마3:11)
두 세례가 비교됩니다.
바로 물세례와 성령세례입니다.
두 세례가 본질적으로 다르거나 효능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세례를 주시는 자의 신분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요한이 준 물세례의 권위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요한이 설명하고자 하는 예수님은 기원이 사람이 아닌 성령을 보내실 하나님 되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요한은 예수님의 기원을 성령을 보내실 하나님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라는 비교는 인간과 하나님의 차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세례를 신약시대가 되어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순절을 제외한 신학은 성령세례가 곧 중생(거듭남)을 일으킨다고 봅니다.
(오순절은 성령세례를 제2의 축복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런(성령으로 세례 받음) 어려운 말씀에 대해 청중들은 무슨 뜻인지 묻지 않습니다.
너무 어려워서인지 아니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기에 그런지 질문하지 않습니다.
니고데모처럼 청중들은 거듭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까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인하지 않고는 거듭나지 못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구약 성도들은 모두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기에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 성도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거듭났다는 증거가 있을까요?
이것은 곧 구약 성도들의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구약 성도들이 성령으로 세례 받았다면 그것은 그들이 거듭났음을 증거합니다.
이런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은 채 우리는 긴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복음중의 복음 곧 복음의 핵심을 비켜간 것입니다.
물세례가 곧 성령세례를 받았기에 외적으로 행하는 것처럼,
외적 할례는 곧 내적으로 할례 곧 마음의 할례를 받았기에 유효합니다.
구약적 표현으로 마음의 할례는 신약적 표현으로 성령세례입니다.
구약 선지자들은 할례의 근원을 마음에서 찾습니다.
마음과 귀에 할례를 행할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곧 육체에 할례를 행했다면 당연히 마음에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니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롬2:29)
성령세례처럼 구약 성도들도 마음의 할례가 있었기에 참 신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물 세례와 예수님의 성령 세례는 그 효능의 차이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례자의 기원의 차이 곧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구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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