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신앙서적

정암(正岩) 박윤선 박사의 생애와 신학

오은환 2022. 10. 22. 20:24

이 글은 합동신학교 이승구 교수가 쓴 것으로 스승 박윤선 박사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박윤선(1905-1988) 박사는 평안북도에서 태어났고, 19세에 대동소학교를

6학년으로 입학하여 1년 공부하고 졸업했습니다.

17세에 동문동 교회에 출석했으며, 18세에 15세 되던 김예련과 혼인을 합니다.

 

26세 되던 1931년에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장로교신학교에 입학합니다.

34세에 평양신학교를 29회로 졸업하고, 원어를 배우기 위해 메이첸 박사를 만나러

웨스트민스터에 가서 공부합니다.

 

 

박윤선 박사는 시대적인 소명을 받은 것 같습니다. 

박형룡 박사가 조직신학으로 한국교회에 뼈대를 놓은 것처럼, 박윤선 박사는 

성경신학을 통해 혈액을 온 몸에 공급합니다. 

 

"마침내 웨스트민스터에서 나는 칼빈주의를 완전히 받아들였다.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이제 미래의 한국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깨닫고 한국으로 돌아왔다"(p.618)

 

 

이전의 평양신학교는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이지만 선명한 칼빈주의를 전하지는

못하였다고 생각했던 박윤선 박사에게 칼빈주의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소명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정암 박윤선 박사에게 뼈아픈 사건이 있습니다.

신사참배에 참여했고, 두고두고 후회를 했습니다.

 

"정암은 신사 참배와 일본기에 대한 경례 문제로 고민하다가 드디어 사임하고, 

봉천에서 80km 떨어진 공업 도시 안산으로 가서 해방 직전 2년 동안은 

요한계시록 주석 쓰는 일에만 집중했다고 한다."(p.623)

 

1946년 2월 월남하여 한상동 목사와 함께 평양신학교 전통을 잇는 신학교를 

세우자는 뜻에 동의합니다. 월남할 때 지닌 책들이 있습니다.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 흐레이다너스의 요한계시록 주석

지니고 왔다고 홍치모 교수는 전한다."(p.624)

 

박형룡 박사와 박윤선 박사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요?

특별히 박형룡 박사은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습니다. 

평양신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쳤던 그 신학이 바로 사도적 신앙이며, 지켜야 할
신학이라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신학의 수립이란 결코 우리가 어떤 신학 체계를 창작함이 아니라

사도적 전통의 바른 신앙을 그대로 보수하는 신학, 우리 교회가 칩십년 전에 

창립되던 당시에 받은 그 신학을 우리 교회의 영구한 소유로 확보함을 이름이다."

(p.628)

 

박윤선 박사 역시 비슷합니다. 

"박윤선의 신학이란 독특한 그 나름대로의 신학을 일컫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바울과 어거스틴과 칼빈의 신학이요, 칼빈주의의 신학이며, 개혁주의

신학이고, 웨스트민스터교리 표준에 밝혀 놓은 장로교 신학을 이어받은 

신학이다"(p.641)

 

박윤선 박사는 성경 연구에 몰두하는 스타일이어서 가정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평가를 많이 받습니다. 48세에 화란에 5개월 정도 유학을 가기도 했습니다. 

화란 유학은 사모의 죽음으로 끝났지만 신구약 주석 저술에 있어서 폭을 넓혀

주었습니다.

 

1980년 총신 학내 문제로 혼란을 겪을 때 이영수 목사를 불러서 퇴진을 종용합니다.

하지만 교권을 쥐고 있던 이영수로부터 큰 상처를 입습니다. 

 

"당시 교권의 대표자인 이영수 목사에게 정암이 한국교회 전체를 위하여 교회 정치로부터

물러나도록 호소해도 듣지 않고, 오히려 위협하는 말로 대응할 뿐 아니라, 행정에도 무능한

인물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자 정암은 학장 서리직을 사임하였다"(p.637)

 

정암 박형룡 박사의 개혁 사상은 무엇일까요?

이승구 교수는 몇 가지로 간추립니다.

 

첫째,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둘째, 성경 중심주의입니다. 

셋째, 교회 중심주의입니다. 

넷째, 일반은총과 그리고 이에 따른 세상에서의 적극적 삶에 대한 강조입니다. 

 

박윤선 박사의 가르침에 대한 열정은 학생들에게 전해집니다. 

성경 연구의 기쁨과 사명의 가치를 알았기에 그렇습니다.

 

"공부하다가 죽었다는 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