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지는 않지만 성경에서 열띤 토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토론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사가 크다고 보면 됩니다.
매우 중요한 일들은 토론을 거칠 때 더 안전합니다.
- 12살 때 성전에서 토론(눅2:41-52) -
※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고 하시며 묻기도 하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눅2:46-47)
이스라엘의 절기를 보면 유월절부터 첫 달이 시작됩니다.
우리로 보면 약 세 달 정도 늦게 시작하기에 3월 말에서 4월 초 정도 됩니다.
(부활절이 유월절과 맞물려 있기에 우리들은 항상 3월 말에서 4월 초에 부활절을 지킵니다)
유대인의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얼굴을 보이는 관례를 따라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올라
갔습니다(신16:16). 그런데 되돌아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사흘 동안이나 선생들과 토론을
합니다. 부모에 대한 걱정도 잊을 정도로 열띤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 출처:신천동성당 행복나루 -
혼자서 여러 명의 선생들(랍비)과 성경을 토론했습니다.
성경의 어떤 주제로 토론했을까요?
토론 주제에 대해서 침묵하지만 그것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이 바로 자신 곧 메시아에 대해 기록했다고 알려줍니다.
*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7)
더군다나 유월절 절기에 만났기에 유월절 어린양 되신 자신이 죽을 것과 그것이 모든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살리는 것임을 증거 했을 것입니다.
토론이 사흘 동안이나 지속된 것은 랍비들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랍비들을 포함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제자들마저도 예수님의 공생애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 어려웠을까요?
*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24:25-26)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도래와 더불어 곧바로 새로운 시대가 펼쳐질 것을 꿈꾸었습니다.
이런 소망은 메시아의 수난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유대인들이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미흡하다고 생각하기에 믿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랍비들은 이후에도 여전히 메시아의 고난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 역시 예수님을 메시아가 아닌 선생 정도로만 인식했습니다(요3:2).
토론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처럼 완전히 이해될 때 마치게 됩니다.
유대인들의 메시아 관련 이해는 그 눈이 밝아져 바울처럼 고백할 때 끝나게 됩니다.
★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행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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