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신앙서적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오은환 2024. 11. 28. 16:19

 

 

이 책은 텍사스 출신 E.P. 샌더스가 쓴 책으로 바울신학과 복음서에서 갈등을 빚은 유대교의
구원론(?)을 다룬 책입니다. 

유대교(주전 200 ~ 주후 200)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루겠다는 것이

샌더스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이 책은 기존 개혁주의 교회와 신학자들이 가진 <유대교의 율법주의>가 진실이 아니라

크게 왜곡되었다는 관점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유대교가 율법을 준수해서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는 견해들이 유대교 문헌들과는
전혀 매칭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샌더스는 유대교가 행위구원을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은혜와 회개 가운데서 율법을 선물로

여기며,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것으로 바라봅니다.

회개(참회)를 통하여 죄가 속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기에 유대교가 율법주의 종교가 아닌

은혜의 종교라 생각합니다. 

샌더스가 주장하는 것은, 

 

"랍비 유대교는 ...우리는 편의상 이 견해를 종종 구원론이라 부르겠다. 이 광범위한 견해는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말로 요약하여 표현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언약적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계획속에 들어있는 한 사람의 자리가 언약에 근거하여 확립된다는 견해요, 언약은

사람이 언약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언약에 합당한 반응으로 사람에게 요구함과 동시에

사람이 지은 죄를 속할 수단을 제공했다는 견해다."(P.92) 

 

유대교 랍비들이 성경의 계명들을 상세하게(613가지) 구분하고 정밀하게 탐구하게 만든

종교적 동인을 두 가지로 묘사합니다.

 

"랍비들이 가졌던 견해는 구원이 수많은 계명 이행 결과를 모아들일 수 있는 그들의 능력에 

달려있으며, 율법의 정확한 정의가 이렇게 모아들이는 일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 이스라엘은 언약 속에 있기 때문에 율법을 가능한 한 전체적으로 또한 완전하게 지켜야

했다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즉 랍비들은 자신들의 노력을 구원을 얻으려는 노력으로 보았을 수도 있고, 자신들의 노력을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이들에게 계명을 주신 하나님께 보여야 할 유일하고 적절한 반응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P.93)

 

샌더스는 이 책에서 '선택과 참회(회개)'를 매우 중요한 관점으로 제시합니다.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이며, 어떤 잘못이든 참회를 통해 용서를

받음도 유대인의 구원에 있어서 은혜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랍비 종교에 구원과 관련된 교리가 있다면 그것은 선택과 참회다."(P. 172)

"범죄는 그에 상응하는 선행으로 상쇄해야 할 게 아니라 속죄해야 할 것이다."(P. 173)

 

참회의 수단으로 제사만을 유일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선을 행하려는 의도나 선행 그리고 

고난까지 포함시켰습니다. 악한 생각은 악한 행동으로 옮길 때만 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 - 살인, 간음 - 과는 많이 다릅니다)

 

"랍비 시므온 벤 요하이는... 선행을 아주 많이 한 사람이라도 마지막에 반역하다 저주를 받을 수

있는 반면, 지극히 악한 죄인도 마지막에 회개하면 구원을 받는다. 

여기에서도 다시 행위 중 많은 쪽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이론을 배제한다.'(P. 163)

 

샌더스는 율법과 참회를 통해 <언약 안에 머무름>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 유대교의 입장이라

말하는데 이것을 언약적 율법주의라 부릅니다. 언약적 율법주의는 행위구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구원임을 강조합니다. 이런 샌더스의 주장은 기존의 유대교를 행위구원론자라고

정죄했던 개신교 신학에 큰 타격을 가합니다. 

 

"내 의도는 랍비 종교를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하심을 얻는 종교요, 인간이 자기가 저지른

범죄보다 많은 계명을 이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종교라고 보는 견해 외에 있을 수 있는 <또 다른>

견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견해가 완전히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내 의도는 신약 신학자들 사이에 일관되게 유지되어온 베버의 견해를 무너뜨리되.."(P. 220)

 

예수님이나 바울이 말한 유대교 비판에 대해 샌더스는 두 가지 입장을 취합니다. 

하나는 바울이나 예수님이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제대로 몰랐다는 것입니다. 

즉 오해로부터 나온 말이며, 바울이 가진 결함으로 여깁니다.  

 

"바울도 그의 복음을 곱씹고 성찰한 점에서는 신학자였다고 말할 수 있으나, 체계있는 신학을

제시한 신학자(조직신학자)는 아니었으며, 심지어 그가 로마서를 쓸 때도 그런 신학자는

아니었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나아가 바울 사상이 본질상 체계가 없고, 그 사상을 표명한 

형태가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바울을 일관된 사상가로 본다."(P. 358) 

 

바울이 철저하게 유대교를 비판한 이유를 하나 더 들면 유대교는 단순히 언약 안에 머물러

있다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에서 차이를 발견합니다. 

유대교는 그 자체로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바울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었다는 차이입니다. 이런 차이를 통해 유대교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회개하는 자는 언약 관계 안에 머물 수 있지만, 범죄를 반복하거나 가증한 범죄를 저지르면

그 구성원에서 지위를 박탈당한다."(P. 421)

 

"믿는 자들은 주와 한 몸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주의 날에 구원을 받는다."(P. 431)

 

"바울의 종교패턴은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말로 묘사할 수 없고, 본질상 팔레스타인 유대교

문헌에서 발견되는 어떤 종교 패턴과도 다른 신앙을 제시한다."(P. 433)

 

"바울과 유대교를 비교하여 얻어낸 결론 중 하나, 곧 주변부에는 일치점이 있으나 기본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얼추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양자 사이에 상당한 일치점은 있으나

기본은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P. 442)

 

샌더스가 생각하는 예수는 누구일가요?

'역사적 예수'를 주장하는 신학자들과 유사합니다. 

성령 잉태와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으며, 예수를 단순히 한 명의 선지자로 인식합니다.

또한 예수의 죽음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묘사하며, 제자들이 예수 운동을 벌이기 위해 인위적

으로 성경과 역사를 왜곡시켰다는 견해입니다. 

 

"나는 예수와 바리새인의 갈등을 묘사하는 본문 대다수의 진정성을 의심했으며, 어쨌든 그런

다툼이 상당히 적었음을 발견했다...예수는 이스라엘을 회복한 선지자였다. 그는 한 종말론적

선지자(세례 요한)의 제자로 시작했으며(이 부분은 김세윤 교수도 동일한 주장), 그의 사역은

결국 종말론적 유대교 운동으로 귀결되었다...성전 뜰에서 상인들의 탁자를 뒤엎은 것인데, 

가야바는 이를 보고 예수가 폭동을 유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로마 체제의 여러 요구는 결국 그를 처형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의 제자들은 그의 운동을

이어가면서, 그가 돌아와 이스라엘을 재건해주길 고대했다."(P. 489-490)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의 패턴과 구조입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2. 율법을 주셨다.

  3. 하나님이 그 선택을 유지하시겠다는 약속과

  4. 그 율법에 순종해야 한다는 요구를 함께 암시한다.

  5. 하나님은 순종에 보상하시고, 범과(율법을 어김)를 벌하신다.

  6. 율법은 속죄 수단을 제공한다. 

  7. 속죄는 언약 관계가 유지되거나 재수립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8. 순종과 속죄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언약 속에 남아 있게 되는 이는(자는) 모두 장차

      구원받은 그룹에 속한다. 

 

첫 번째 요점과 마지막 요점에서 중요시해야 할 해석은 선택과 궁극(최종)의 구원을 인간이

그 공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P. 504-5)

 

샌더스와 더불어 바울신학을 연구하는 대다수 신학자들에게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거듭났으며, 성령이 내주하는 것을 다루지 않기에 율법을 지키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어렵게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나 구약의 유대인들이나 모두 동일한 조건 아래서 신앙생활

했다는 점 자체를 모르고서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정답을 찾지 못합니다. 

구약 유대인들도 모두 성도들이었고, 오늘날 우리들도 성도라는 동일한 관점아래서

율법(말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다룸이 계속되는 혼란을 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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