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땅을 상속 받으라
추상적인 단어들은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이해할 때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나타난 열매들을 열거해보면 마치 뜬구름처럼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5:22-23) 입니다.
온유에 대한 말 역시 그렇습니다. 추상적인 단어라 어느 정도라는 잣대를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
1. 온유
우리가 언급하는 모든 성품의 단어들은 자연인이 가진 것을 근원으로 삼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성령으로 거듭났고, 위로부터 주시는 성령의 내주를 통해 다시 태어난 성품을 소유했습니다.
모세는 태어나서부터 40세까지 애굽의 모든 학문과 지혜, 무예를 갖추었습니다.
*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행7:22)
이런 모세가 자신을 분노감을 감추지 못하고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분노, 실망감 속에서 40년을 광야로 추방되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인정합니다.
*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3)
당시 노예처럼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에 비해 모세의 신분은 비교가 안 됩니다.
노예와 왕자, 무식한 사람들과 최고의 지식을 가진 자로서 비교자체가 실례가 될 것입니다.
그런 모세가 이들의 지도자가 되어 받은 수많은 수모들은, 마치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받은
수치와 같습니다.
받아서는 안 되고, 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받아야 하는 수치와 모욕 앞에서 모세는 옛 혈기를 버리고, <성령으로 인하여>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긴 것이 <온유>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온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성령의 사람이기에 온유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2. 땅을 유업으로 받기에 복이 됩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여기서 땅은 어디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궁극적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 입니다.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가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3)
*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새 하늘과 새 땅 + 새 예루살렘 성) 상속으로 받으리라(계21:7)
하나님께서는 너무 멀리 있는 것들을 약속으로 주셨고, 가시적으로 볼 수 있도록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셨던 것입니다.
3. 성도는 모두 온유 합니다
온유는 어느 특정한 사람들만 가진 소유물이 아닙니다.
성도라면 어느 시대나, 어떤 환경에서도 온유해야 합니다.
성령이 그들과 함께 하기에 온유함은 필연적으로 나타납니다.
시편 37편은 구약성도들 역시 온유했음을 보여줍니다.
다른 말로 이들 역시 성령으로 인하여 온유함을 간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시37:11) |
온유한 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해 시편 37편은 더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그들 모두가 성도임을 가르쳐줍니다.
①<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땅을 차지>하리로다(시37:9)
② <주의 복을 받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시37:22)
③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시37:29)
④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시37:34)
4. 성도의 삶의 모든 근원은 성령입니다
종종 실수하는 것이 성도의 행위 부분입니다. 성도의 행함은 모두 성령의 주신 힘으로 이루어집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원리를 너무 잘 알았기에 이런 기본적인 구조에 대해 생략하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모르면 판단하게 되고, 잘못된 결론에 도달합니다.
흔히 야고보서는 믿음이 없이 행함만 있다고 주장하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이미 성령과 연합된 성도의 삶을 바탕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4:5)
성령으로 통치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본으로 삼아 이야기합니다.
* 내 사랑하는 자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 신30:6>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2:5)
구약이나 복음서의 말씀이나 사도들을 통한 서신서나 모두 성령의 내주와 연합을 바탕으로 성도가 행하여야 할 것들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아신다면,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위대함과 복됨을 현재의 삶에서 구현할 수 있습니다(골1:28-29).
어떤 자들은 산상수훈이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지기에 현재적인 성도들의 삶과 무관하다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산상수훈은 구약의 어떤 교훈보다도 훨씬 지키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런저런 해석들이 많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바로 이러한 삶을 요구하며, 또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성령으로부터 제공받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창조부터 재림까지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항상 동일합니다.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현재 우리 성도들의 삶은 성령과의 연합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모두 동일한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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