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신분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사실 그 단어들은 단지 보기좋게 붙인 것이 아닙니다.
적절한 의식을 통해 주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들, 남편과 아내(신랑과 신부), 주인과 종, 머리와 몸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이런 관계 설정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통해 이루어졌을까요?
언약의식을 통해서 친밀한 관계가 설정된 것입니다.
1. 남편과 아내 = 신랑과 신부
언약에 대한 많은 이론들이 존재합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언약을 맺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사람들에게 구속과 성령의 내주 하심을 베푸시기에 가능합니다.
언약을 지킬 때, 그 행위를 근거하여 구속함과 성령의 내주를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구속과 성령의 내주의 유효함이 언약을 떠나도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속과 성령의 내주를 기반으로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의 유효함은 구속과 성령의 내주 안에서만 지속됩니다.
언약의 의미 중 하나는 바로 결혼입니다.
하나님은 남편이 되고, 사람(구약 이스라엘, 신약 이방인)은 아내가 됩니다.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렘3:14)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남편 됨이 언약에 근거한 것을 알려줍니다.
* 이 언약은(새 언약)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의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2)
하나님의 남편 되심은 언약을 맺는 의식을 곧 결혼에 근거해서 나온 용어입니다.
남편이나 신랑이란 용어는 신약에 와서도 유효합니다.
*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와 결혼했다는 것 즉 언약을 체결했다는는 것은 단순히 문서상으로만
맺은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단순히 계약상으로만 결혼을 완성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부부는 실제적으로 한 몸을 이루어 살 때 진정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한 몸을 이루게 하심으로 실질적인 부부생활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령이 언약 백성들 가운데 내주하심은 곧 부부생활의 최고 선물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야고보(약4:5)는 이방인들이 언약 백성이 되었을 때 구약 성경을 인용해서 성령의 내주를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구약인용>,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6:16)
2. 아버지와 아들
혹자는 구약은 종이나 백성의 신분으로 구원에 이르고, 신약은 자녀의 신분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구약을 신약보다 하등한 관계로 설정하려 합니다만 어리석은 생각일 뿐입니다.
구약백성들 역시 신약과 동일한 아들의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 ...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신32:6)
*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사63:16, 64:8)
하나님의 자녀 됨 역시 성령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 ...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3. 주인과 종
언약의 성격은 다양합니다.
물론 언약의 근거가 되는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내주는 변함 없습니다.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게 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섬기듯 그렇습니다.
* ...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말1:6)
위 구절은 언약에 담긴 풍성함을 드러냅니다.
언약으로 인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공경함으로>,
주인과 종의 관계를 <두려워 할 관계>로 알려줍니다.
특별히 종과 주인의 관계는 신약에서 더 풍성하게 나타납니다.
(마6:24, 눅10:2, 12:38,43, 요13:6, 15:20, 딤후2:21, 롬14:4)
종은 주인을 두려워함으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종이 어떻게 주인의 마음을 알고 따르는가 입니다.
주인은 자신의 뜻을 종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종들은 마땅히 성령을 따라 주인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성령에 근거한 것임을 자주 언급합니다.
*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
신앙은 단지 추상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성령의 내주와 그 인도하심에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은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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