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복음서

김성수 목사의 산상수훈

오은환 2017. 3. 9. 01:51

소천하신 분을 평가한다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좇으므로

공인으로서 이해하고자 합니다.

 

그의 산상수훈 강의는 40 여편이 넘습니다.

1시간 10분 이상으로 구성되어서 매우 방대한 분량입니다.

다 듣지 못했지만 중요한 부분들을 들으며 정리합니다. 

 

김성수 목사는 이 강의를 위해 약 27권의 책을 읽으면서 준비했습니다.

기존의 해석들을 간단하게 요약합니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처럼 살아야 복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김성수 목사는 기존의 가르침을  '다시 구약으로 돌아가는 율법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을 시작합니다.  

 

1. 구약을 보는 눈이 매우 특이하다

김성수 목사는 구약을 매우 부정적으로 봅니다.

<인간의 의>를 부수는 것이 산상수훈의 말씀이다.

구약이 인간의 의를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의 의>가 신약의 새 언약에 의해 박살이 난 것이 산상수훈의 현상이라 합니다.

 

2. 신약과 구약은 원수지간인가?

"신약의 산(산상수훈, 은혜)이 구약의 의(율법)를 부순다"

"창수가 나서 무너지는 것이 구약이다"

"열두 제자에게만(신약교회에게만...구약은 교회가 아닌가? ) 산상수훈을 가르쳐준다" 

 

김성수 목사는 구약과 신약이 전혀 공존할 수 없는 다른 것으로 봅니다.

구약이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전하므로 복음이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3. 잘못 이해한 구약의 하나님 나라

김성수 목사는 구약적 패러다임을 지닌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이스라엘이 가진 하나님 나라를 <민속 메시아 사상>이라 단정합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은 구약적 하나님 나라의 잘못된 패러다임을 무너뜨리는 것이라 판단합니다.

 

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크다보니 <저주받을 구약>으로 정죄합니다.

도대체 이런 생각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성경해석은 기반이 어긋나 있습니다.

철저하게 알레고리칼(풍유적) 해석을 기초로 삼는 것이 취약점의 이유입니다.

 

4. 잘못 이해한 율법

잘못된 이해는 비극의 시작이 됩니다.

그는 구약의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주는 기능'으로 여깁니다.

율법은 그 자체가 의를 제공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님을 잊고 있습니다.

 

결국 구약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했기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판단합니다.

시내산에 강림하신 하나님을 만나러 산에 올라가지 못함을 율법을 지키지 못함에서 찾습니다.

이건 독특한 해석이 아니라 황당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김성수 목사는 구약에서 구속과 성령의 내주를 보지 못했습니다.

구속과 성령의 내주를 받았기에 율법을 부여 받았다는 틀을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5. 산상수훈 해석의 딜레마

아쉽게도 그에게서 잘못된 전제가 크게 보입니다.

구약성경 속에는 산상수훈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은 마치 구약의 율법을 버리고 새로 탄생한 법으로 생각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죽이는 것이고 신약의 산상수훈은 살리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구약을 온전히 보지 못한 산물입니다.

칼빈처럼 율법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존재한다는 틀을 갖지 못했습니다.

율법은 율법이 제시한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문자적인 것만 보고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자들에게는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김성수 목사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자들의 율법관을 지녔습니다. 

 

"구약의 복과 신약의 복은 다르다"

 

신구약의 통일성을 보지 못한 말입니다.

그에게서 매우 아쉬운 부분입니다.

신구약의 통일성이 결여됨입니다.

 

6. 산상수훈 해석의 중요한 전제 - 구속과 성령

김성수 목사는 구속과 성령이란 틀이 마치 복음서나 신약성경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령>이 산상수훈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밀어 넣는다'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산상수훈에서 성령의 조명과 감동 그리고 인도하심을 본 것은 매우 귀중한 보물입니다.

 

여기서 질문해야 합니다.

성령의 조명과 감동 그리고 인도하심은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김성수 목사는 이런 성령의 역사가 구약에는 없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이 곧 산상수훈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치 못합니다.

 

7. 풍유적 접근의 위험성

그는 생명나무는 신약이며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구약(율법)이라 해석합니다.

이런 풍유적 해석은 오리겐을 통해서 나왔고 그 폐해가 너무 커서 이미 사라진 해석법입니다.

김성수 목사는 성경 전체를 풍유적 해석으로 접근하기에 매우 위험하고 무익한 일을 행한 것입니다.

 

8. 빛은 말씀인가?

산상수훈(마5-7장)에 나오는 모든 빛을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여기에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마5:14), 너희 안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마6:23)에서 빛이 말씀일까요?

 

성소 안에 촛대의 빛은 건너편 떡상 위의 말씀을 조명합니다.

따라서 촛대의 빛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이런 일반적인 해석을 뒤엎고 있습니다.

 

심지어 계4:5절의 켠 등불 일곱을 빛으로 보면서 말씀이신 예수라 합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성령으로 보는 빛을 예수님이라 하는데 너무 어긋나게 해석합니다.

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어린 양이나 사자로 나와서 오히려 그 손에 하나님의 일곱 영을 붙잡고 있습니다(계5:6).

어떻게 자신이 자신을 붙잡고 있단 말일까요?

 

허점이 많은 해석들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9. 기존 교회에 대한 불신과 미움

그의 성경 해석은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 많습니다.

특히 구약의출발점에서부터 빗나갔습니다.

그의 외침은 이렇습니다.

 

 "율법이 배설물(똥)이다"

 "율법은 무익하다"

 "대부분의 교회가 배설물을 나누어주고 있다"

 

설령 교회가 잘못되었고 이해력이 떨어진다고 하여도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예수님이 흠이 있는 교회들을 그렇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김성수 목사의 산상수훈을 통해 건전한 것은 받아들이되, 

잘못 세워진 틀은 파국으로 인도함으로 버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