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수 교수의 요한계시록은 대 신학자로서 경륜은 보이지만 재림에 대한 절실함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왜 살아 있는 성도들이 휴거되어야 하는지 절박한 상황이 보이지 않습니다.
느슨한 상태로 살아가다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영접할까요?
*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계15:2)
*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계15:3)
위의 구절은 계시록에서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 휴거되어 큰 감동속에서 노래하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들 가운데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데 저자는 이것을 느슨하게 표현합니다.
"3절 이하의 찬양은 새로운 출애굽 구원을 이룬 하나님을 "전능하신 이" 또는 "만국의 왕"으로 부르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크고 놀랍고 그의 길이 의롭고 참되다고 칭송한다.
이런 하나님 칭호나 표현들은 시편과 예언서에서 끌어온 것이다"(p.283)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여 재림과 휴거라는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신 일을 찬양하고 있는데 이것을 시편과 예언서에서 끌어온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대단한 실례로
보입니다. 실제상황을 재방송을 보듯 기술하는 것은 예민한 저술가의 모습이 아닙니다.
왜 저자는 이런 놀라운 일을 평범하게 묘사할까요?
"필자는 계시록이 점진적 반복의 방식으로 서술되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인,나팔, 대접 재앙들이 엄격한 연대기 순서를 따라 전개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본다.
각 심판 시리즈의 마지막 재앙은 항상 최후심판 장면으로 끝나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인, 나팔, 대접 심판은 각각 최후심판을 향하면서도 전 역사에 걸쳐 임할 심판 재앙들을
하나의 사이클처럼 점진적이고 반복적으로 강화시킨다"(p.281)
"요한이 일곱 재앙들을 언급한다고 해서 그것들을 재림 직전에 실제로 일어날 일곱 개의
특정한 재앙들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p.291)
저자의 계시록이 재림과 부활, 휴거 부분에서 힘이 약한 것은 신학적인 틀이 그렇게 만든것입니다.
재림에 임박해서 일어날 일들을 초림부터 재림 사이에 반복적으로 일어날 사건들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창세 이후로 볼 수 없었던 전무후무한 대환난이 있은 후 재림이 있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24:21)
재림은 대 환난의 절박함 속에서 일어납니다.
살아 있는 성도들의 급박한 휴거가 없이는 아무도 살아서 주님을 보지 못할 정도의 큰 환난 가운데서
성도들을 구하기 위해 주님이 오시기에 그 절박한 재림의 배경을 보아야 합니다.
★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었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심판재앙들 역시 대 환난이 깊어질수록 더 강도가 강해집니다.
서로 연관되어서 실행되는 것을 알지 못하면 재림과 휴거의 역동성을 메마르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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