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년 니케아 교회 회의에서 알렉산드리아 아리우스(250-336)의 성자 피조설에 대한 반박과 올바른
결론을 내리도록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아타나시우스'입니다.
아타나시우스(296 혹은 298년 ~ 373년)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하였고, 젊은 시절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합니다.
318년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가 '성자가 피조물이다'라는 주장을 했을 때 이를 반박하는 역할을
대주교 알렉산드로스를 도와 펼칩니다.
"아레오스(아리우스)와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의 주장인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는
주장을 뒤엎어,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 실체로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아버지에게서 출생하였다는
전통적인 신앙으로 확정하였다"(신학지남, 1998년 여름호, p.89)
서철원 교수는 그의 논문 "아따나시오스 신학"(신학지남, 1998년 여름호)에서 그의 생애를 간략하게
묘사합니다.
"아따나시오스는 수없는 살해 음모와 무고와 체포의 위협을 당하여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25년 어간에 걸쳐 유배를 반복하였다(337~361년).
...단 한 사람이 온 천하를 맞서서 싸워 니케아 정통 신앙을 지켰다. 그는 자기 영달과 안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바른 신앙의 확립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투쟁하였다"(p.89)
계속된 유배생활을 마무리하면서(362년) 죽을 때까지 당시 혼란스럽던 신약성경 정경화 작업을
완수하였습니다. 367년 부활절에 그가 작성한 신약성경 목록 27권을 발표하였고,
383년 로마 공의회에서 인정하였으며,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공포되었습니다.
그의 사후(373년)에 아타나시우스의 견해가 채택된 것입니다.
'25. 사상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자의 출생(나심)과 성령의 발출(보내심) (0) | 2020.12.14 |
---|---|
진리의 열정에 불타는 아타나시우스 (0) | 2020.12.12 |
신앙규범 (0) | 2018.08.01 |
2 세기의 교회(주후 100-199년 사이) (0) | 2018.07.31 |
군주신론 (0) | 2018.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