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귀신들린 자

오은환 2023. 3. 17. 22:10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문제는 쉬운듯 하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쉽게 말할 수는 있지만 근원을 찾아 이것이 답이라고 말하기는 힘든 작업입니다. 

선진국이 된 나라들에서 여러 정신질환들이 발견됩니다. 

옛날 같으면 나누기 힘들었던 병명도 세밀하게 다룹니다. 

 

* 저물대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마8:16)

*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쫒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막6:12-13)

 

당시 이방인들도 귀신 들린 자들이 많았지만(행8:7)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귀신 들린 자들이 많았다는 것은 여러 신학적 과제들을 던져줍니다.  

오늘날 교회들과 여러 성도들에게서도 귀신 들린 현상들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1. 귀신 들림은 언제 드러나는가?

첫째, 귀신의 힘이 사람을 압도할 때 드러납니다. 

자신이 스스로를 조절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합니다. 

이런 경우 반복해서 귀신의 역사가 되풀이 됩니다.

 

둘째, 귀신보다 더 강한 자 앞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에 많은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주었습니다. 

귀신 들렸다는 것을 몰랐던 경우에도 드러나게 됩니다. 

 

2. 믿는 자(성도)도 귀신 들릴 수 있는가?

아주 중요하면서도 다루기가 쉽지 않는 분야입니다. 

왜 구약성도들의 집합체인 이스라엘에 이처럼 귀신 들린 자들이 많았을까요?

이 말을 바꿔보면, 교회 안에도 귀신 들린 자들이 많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성도들이
많다는 것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구약 이스라엘의 모임 곧 구약 교회라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구약을 읽으면서 그저 유대인이라는 인종의 역사를 다루었다고 
보는 것은 구약교회를 보지 못한 잘못된 출발입니다. 

 

* 마침 그들의 회당(가버나움)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막1:23)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있는 가버나움 회당은 지금도 그 터와 기둥들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보아도 매우 큰 건물로 당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드리는 가운데 귀신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왜 회당에 있던 그 사람은 귀신에 사로잡혔을까요?

성도가 귀신들릴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3. 귀신을 쫒아내면서 요구했던 것

제자들의 귀신쫒음은 예수님이 파송한 이유가 됩니다.

제자들은 배운대로 먼저 선포를 합니다.
고통당하는 언약백성들(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요구했습니다.

 

*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쫒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막6:12-13)

 

믿는 성도들이 귀신들림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언약 안에 머물지 않았음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거듭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까지 갔음을 회개하라는 요구입니다. 

 

*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

 

4. 치유와 죄의 연관성

복음서나 구약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유대인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자녀(백성, 아들, 신부, 종, 의인, 성도)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말로 이스라엘은 구약교회입니다. 

거듭난 자들로 이루어진 거룩한 백성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오셔서 고통당하는 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귀신 들린 자, 질병에 걸린 자, 장애를 가진 자, 마음이 상한 자들을 치료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2:5)

 

*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막2:10)

 

예수님은 스스로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기에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습니다(사53:11). 

공생애 기간의 치유사역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의 죄를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유를 마치고 때때로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 ...나도 너(간음한 여인)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8:11)

 

5. 성도가 어떻게 귀신에게 지배 당하는가?

성경을 통해 이런 결론을 추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도 몇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1) 고칠 수 없는 경우

사울 왕처럼 악령에게 사로잡힌 경우는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사울이 성령의 사람(삼상11:6)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에게 붙잡힌 이유가 있습니다.

아담처럼(호6:7) 사울 왕도 의도적으로 언약을 거역한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사울 왕도 성례를 더럽힘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머물기를 거역한 것입니다. 

 

*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삼상13:10)  

 

사울이 의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거역했을 때 성령이 떠났습니다(삼상16:14).

그리고 여호와께서 부리신(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을 엄습했습니다.

오늘날로 본다면 사울은 정신분열이 일어났고, 망상에 사로잡혔습니다(삼상16:15, 18:10).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사울이 귀신 들린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형벌로써 하나님이 보낸

악한(형벌) 영에 사로잡힌 것인지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쫒아낸 귀신들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쫒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마12:26)

 

 2) 고칠 수 있는 경우

구약 성도들인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신약 교회 성도들도 성령을 거스리며 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숨겨서는 안 됩니다. 

스데반이 이해한 구약 이스라엘은 항상 성령을 거스리는 삶이었습니다. 

 

*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행7:51)

 

이것은 스데반 뿐만 아니라 사무엘 또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가 이런 혼란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성령)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삼상12:15)

 

성령이 떠난 상태에 있는 성도들의 삶은 피폐합니다.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겠습니까?

예수님은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었지만(마12:43), 계속해서 성도가 더럽게 살면, 

그 나중은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처한다고 경고하십니다. 

 

*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시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12:45)

 

성도에게 나타나는 정신분열이나 귀신들림의 구체적인 정황은 우리 인간이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경우에 대해 당사자나 하나님은 잘 아시지만, 타인이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복음의 행적을 거부하는 것은 곧 성령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6. 귀신 들림과 정신병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현대 신학자들은 이 둘을 구분하려 합니다. 

정신병은 질병의 한 부분으로 보고, 귀신 들림은 영적인 부분으로 봅니다. 

이것을 구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구분하지 않으려는 것도 어렵습니다. 

결과가 너무도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삼상18:10)

 

게임을 많이 하거나 어느 것에 심취한 경우 심한 환청을 듣습니다. 

현실과 가상 공간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정신병과 귀신 들림은 유사하면서도 다소 차이가 있기에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성도들도 이런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