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가장 논란이 되면서도 섣불리 결론을 짓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이 구절을 가지고 <어떤 상태의 인간>을 묘사하는지 끝없는 토론이 발생했습니다.
대체로 3 가지 주장을 펼칩니다.
①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삶의 고백 - 유럽의 내륙지역 학자들/옥한흠, 하영조,이종윤
② 회심전 율법 아래 있었던 유대인 바울의 상태 - 영미 신학자들/이한수
③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상태 - 존 스토트
한국의 상당수 목회자들은 ① 번을 추종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학대하며, 계속해서 회개아닌 회개와 비탄을 쏟아내는 것이 신앙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사도들의 다른 서신에서는 한 번도 이런 표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올바른 해석은 ② 번 입니다.
율법은 알고 있지만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상태에 놓여있는 자들을 묘사한 것입니다.
조금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이며,하나님의 선하심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직전의 상태입니다.
*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 거듭나지 못한 상태>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롬7:4)
바울이 말하는 육신 아래 있을 때는 여전히 옛 사람의 상태를 묘사합니다.
쉽게 말해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보지 못하고, 그러므로 믿지 못한 상태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보지 못해서 거듭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것은 율법 아래서만이 아니라 양심아래 있는 모든 인간에게도 적용됩니다.
누구든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면 이런 상태에 직면해서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됨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해 보십시요.
구약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대속>을 보았던 자들은 어떤 상태였을까요?
그들에게도 여전히 <정죄함 상태>에 있었을까요?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 가운데 이미 구속의 은혜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역시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럼 어떤 자들이 정죄함 아래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육신을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가운데서 성령을 따라 사는 자들은 이런 정죄함에서 벗어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8)
어떤 자들은 구약을 읽으면서 그들에게서 성령을 보지 못하기에 정죄함에서 벗어난 해석을 하지 못합니다.
구약 성도들이 성령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에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걱정스런 것들을 날려 버립니다.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히11:6)
구약 성도들 즉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약속을 믿는 믿음아래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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