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칼빈신학 122

칼빈의 고민 - 구약백성들의 중생은 있었나?

칼빈을 비롯한 개혁주의자들은 구약 백성들의 중생에 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날 대다수가 구약에는 중생이 없다고 하는데,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다음은 (팔머 로멋슨 박사 저, 김의원 역, 기독교 문서 선교회)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핵심내용은, 1. 구약에 중생의 역사가 이미 있었다. 2. 그 중생은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를 입었다. 그 방법이나 과정에 대해 다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 또한 두 가지가 있었다고 동의합니다. .................... "옛 계약의 사역하에서는 성령의 중생역사가 없었다고 예레미야가 말하고 있다고 추측해야 할까? 다시 새로워진 마음이 계약 당사자들의 소유가 된 것은 새 계약하에서뿐인가? 은 이런 어려운 질문에 을 제공하였다. 이 질문에 대해 나..

21. 칼빈신학 2016.08.29

견인교리 - 어디까지인가?

칼빈의 주장이면서 장로교의 독특한 교리가 바로 성도의 견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은혜에서 절대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견인교리가 나왔는지 성경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루이스 벌꼽의 조직신학에서 견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 견인(堅忍, perseverance)이란, 성령께서 신자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시작하고, 계속하여 마침내는 그것을 완성케 하시는 성령의 계속적 역사라 하겠다(기독교 신학개론 p.291)." 견인에 대한 오해는 여러 측면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① 성령은 성도의 믿음과 상관없이 계속적으로 은혜만을 베푸는 것이 성경적인가? ② 성령은 성도가 배교하려고 할 때에도 필연적으로 막아야만 하는가? ③ 성경에는 많은 배교자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처음부터 신자가 ..

21. 칼빈신학 2016.05.20

칼빈이 계시록 주석을 쓰지 않은 이유

칼빈은 성령을 따라 살려고 무던히 애썼던 그리스도인입니다. 일주일에 일곱 편의 설교를 했기에 바쁘기도 했지만 그가 계시록을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그는 자신의 임무를 잘 파악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굳이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습니다. 예를들어, 경건의 영역 같은 부분은 자신의 한계를 잘 보고 있기에 구체적인 기술은 피합니다. 둘째, 당시의 환경에 충실했습니다. 학문적인 깊이나 주석을 써온 경력으로 본다면 계시록의 주석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종교 개혁을 완성해야 하는 사명이 더 크다는 것을 잘 파악했습니다. 만일 칼빈이 계시록까지 썼다면 개혁자들 사이에 더 큰 간극을 만들었고, 더 많은 종파들로 나뉘게 될지로 모른 일입니다. 셋째, 불완전한 ..

21. 칼빈신학 2016.05.20

칼빈신학은 완전한가?

완전한 신학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더 이상의 연구나 수고를 줄일 수 있고, 현실적인 일에 집중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칼빈 탄생 500주년 행사들이 2009년에 세계 곳곳에서 있었습니다. 칼빈은 유명한 기독교 강요를 썼고, 많은 주석들과 설교들을 남겼습니다. 큰 틀에서 하나님의 주권이란 신학을 세움으로 신학계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칼빈의 신학을 수용하든 반대편에 서든지 칼빈의 영향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칼빈의 신학은 매우 유용합니다. 거기서 나오는 귀중한 연구와 가르침은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칼빈이 다하지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주석을 보더라도 계시록은 쓰지 않았습니다. 종말론 부분에 대해서는 큰 틀 이외에는 다루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의 각 권 주석은 다른 신학자들처럼..

21. 칼빈신학 2016.05.20

성령을 따르는 칼빈

사람에게 열정은 너무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열정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삶을 살고 생을 마감합니다. 열정과 본능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열정은 어떤 일을 추진하는 동력이 됩니다. 열정을 신앙적으로 보면 성령의 영감과 그 결과 인간의 노력입니다. 영감이 있어야 노력이란 힘이 발생합니다. 본능은 생존하려는 버릇과 같습니다. 버릇은 학습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무심코 행하는 것입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본능은 움직임의 힘이 되지만 평범한 상태에서는 느낌이 미미합니다. 칼빈은 역사에 기록된 다른 천재들처럼 독특한 사람일까요? 그 역시 당시의 상황의 거슬리기 어려운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카톨릭의 부패한 제도를 따라갔던 어린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크게 변화된 이유는 무엇..

21. 칼빈신학 2016.05.20

칼빈의 복음서 이해와 오해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 칼빈은 위 구절에서 회개하는 것과 믿음(신앙)의 순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신학처럼 믿음이 회개에 선행한다는 다소 딱딱하고, 본문에 넣었을 때 어색한 사상을 집어 넣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본다면 당연한 순서입니다. 믿음이 없는 회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복음서를 이해하는 큰 틀을 어떻게 세울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는 이신칭의라는 틀 안에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열매로 판단하겠다는 말씀이 나올 때마다 힘든 결정을 했습니다. 칼빈 역시 복음서 해석에 많은 애로점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첫째로, 당시의 청중들이 구속을 받았는지에 대해 뚜렷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

21. 칼빈신학 2016.05.03

개혁주의/복음주의/근본주의

자주 쓰이는 용어들은 편리하기는 하지만 깊은 뜻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개혁주의, 복음주의, 근본주의를 비교하여 나눠 쓰기도 하고, 때로는 구분 없이 사용하기도 합니다. "복음주의 신학은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의 입장을 따르는 반로마 카톨릭교회의 신학을 통틀어 가리키기도 하고, 반자유주의 신학을 일컫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근본주의 5대 교리(성경무오,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신성과 대속적 죽음, 육체의 부활 및 그리스도의 역사적 재림)와 구별하여 쓰여지기도 합니다" (신학지남, 칼빈주의적 복음주의 신학과 한국장로교회, 나용화 p.92) 복음주의는 어찌보면 개혁주의와 같고, 근본주의 보다는 폭이 넓게 보입니다. 개혁주의나 복음주의의 산물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8)입니다. 이 신..

21. 칼빈신학 2016.04.23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장황한 설명을 반복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정립된 용어를 사용합니다. 개혁주의라는 용어 역시 매우 함축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별히 개혁이란 말은 중세를 이끌고 갔던 카톨릭 사상에 대한 저항으로 나온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카톨릭의 비성경적인 사상들을 거부하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골격을 지닌 것이 개혁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얼마나 카톨릭이 성경을 멀리 떠났기에 이런 용어들이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중세교회사를 돌아보면 쉽게 찾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과는 너무도 다른 카톨릭이 중세 천 년을 버티었던 것을 다시금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회복하자는 것이 개혁주의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종교 개혁자들은 개혁을 시작한 분들입니다. 그분들로 인하여 시작된 개혁은 그 때로 끝..

21. 칼빈신학 2016.04.16

칼빈이 계시록을 저술했다면

칼빈은 성령을 따라 살아가려고 무던히 애썼던 그리스도인이다. 항상 일주일에 일곱 편의 설교를 했기에 바쁘기도 했지만 그가 계시록을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첫째, 그는 자신의 임무를 잘 파악했다. 자신보다 더 잘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굳이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다. 예를들어, 경건의 영역 같은 부분은 자신의 한계를 잘 보고 있다. 둘째, 당시의 환경에 충실했다. 학문적으로 본다면 그는 어느 정도 계시록도 쓸수 있었다. 그렇지만 종교 개혁을 완성해야 하는 사명이 더 크다는 것을 잘 파악했다. 만일 칼빈이 계시록까지 썼다면 개혁자들 사이에 더 큰 간격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셋째, 불완전한 신학을 만들어내지 않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다. 칼빈이 계시록을 썼다면 당연히 아래서 만들어..

21. 칼빈신학 2015.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