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계시록주석 405

심판주

★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계19:15) 예수님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는 것은 상징입니다. 예리한 검은 예수님의 말씀으로(엡6:17) 성령과 천사들이 그 말씀을 실행합니다. 그러므로 심판주 되신 예수님의 말씀은 실행하는 자들이 있기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늘군대인 천사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천하의 왕들과 그의 군대들을 전멸시킵니다. 마치 맹렬한 진노로서 포도주 틀을 밟듯이 처참한 심판을 행합니다. 예수님도 직접 사람들을 죽이는데 참여할까요? 예수께서 크게 분노했다는 표현을 선혈이 튀어 옷을 적시었다는 상징으로 표현한 듯합니다. 악인들을 철장으로 다스린다는 표현은 익..

20. 계시록주석 2019.03.14

하늘군대와 백마의 정체

★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로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계19:14) 하늘군대가 누구인지도 논란이 되어왔습니다. 천사인지 성도들인지 아니면 모두인지 궁금해합니다. 성경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당연히 천사입니다. 성도들은 - 잠자던 성도들이나 살아서 주님을 맞이한 성도들 - 예수님과 하늘군대가 등장할 때 먼저 지상에 있어야 합니다. 땅에서 부활체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해야 하므로 백마를 탈 수도 없으며, 시간적으로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늘군대들이 타고 오는 백마는 어떤 모습일까요? 엘리야 선지자를 맞으러 온 불말일까요?(왕하2:11) 이억의 마병대가 탔던 하늘의 말들일까요?(계9:17-19) 하늘군대로 오는 천사들이 말을 탄 것은 이 땅의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그리..

20. 계시록주석 2019.03.14

피 뿌린 옷

★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19:13) 계속해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백마를 타고, 눈은 불꽃같고, 머리에는 면류관들을 썼습니다. 예수님이 입으신 옷은 피가 뿌려진 상태입니다. 악인들의 피가 묻은 것인지, 십자가에서 구속사역으로 인한 상징을 나타내는 피인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흐름은 후자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예수님이 받으신 영광들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피 뿌린 옷에도 이름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양한 상상력이 발동될 수 있지만 아버지와의 약속을 따라 자신을 속건제물(사53:10)로 드렸던 것에서 받은 이름으로 보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듯이 친히 자신의 피를 뿌려 단 번에 정결..

20. 계시록주석 2019.03.14

많은 면류관

★ 그 눈은 불꽃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계19:12) 예수님의 불꽃같은 눈은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 보십니다(계1:14).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들(디아데마)이 있습니다. 그 면류관들이 어떤 모형으로 있는지 자세한 언급은 없으나 사람의 눈으로 식별이 가능하게끔 된 것은 분명합니다. 계시록 14:14절에는 오직 금 면류관(스테파노스)을 쓰신 모습만 나옵니다. 많은 면류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에 합당한 이름들을 지닌 관을 썼는지도 모릅니다. 천국에는 상급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오늘날도 논란이 됩니다. 재림 후 상급은 면류관의 차이로 볼 수 있습니다. 면류관은 성도의 지상에서의 삶의 과정을 가장 잘 반영한 것입니다..

20. 계시록주석 2019.03.14

충신과 진실

★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리라(계19:11) 11-16절까지 재림의 가시적인 모습을 잘 표현했습니다. 먼저 요한은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환상을 통해 부분적으로 열린 것인지(계4:1) 아니면 전체가 떠나간 것인지(계14) 언급이 없습니다만 후자로 보는 것이 더 문맥과 어울립니다. 요한이 본 예수님은 백마를 타고 있었습니다. 어느 곳은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는데 종합해 보면 하늘구름을 타고, 그 위에 백마를 탄 모습으로 서 있었다고 보면 아무 모순이 없습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은 충신과 진실입니다. 충신(피스티스 - 신앙, 믿음, 확신, 충성, 서약)이란 이름은 충성된 증인(계1:5, 3:1..

20. 계시록주석 2019.03.14

예언의 영 → 성령

★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왜냐하면 가르(for)의 번역이 생략됨)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계19:10) 간혹 오해하기 쉬운 구절입니다. 요한이 왜 천사에게 경배하려 했는지 그의 신앙관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요한이 경배하려 한 이유가 9절 후반부에 나옵니다. 천사가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요한은 그 말씀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천사가 왔을 때 그 앞에 꿇어 엎드립니다(삿13:20). 하나님의 사자를 보면서 하나님을 대면한 것처럼 생각합니다(삿13:22). 이런 측면에서 볼 때..

20. 계시록주석 2019.03.14

혼인 잔치로의 초대

★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계19:9) 천사를 통해 계시록의 기록형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천사는 요한에게 꼭 필요한 부분은 고 말해줍니다. 요한이 혹시 놓칠까 봐 기록하라고 말하고, 또 지나치게 직선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기록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계10:4). 계시록을 오랜 시간에 걸쳐 기록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여기서 초청을 받은 것은 이미 선한 싸움을 마친 자들로 한정합니다. 이 땅에서 복음초청을 받은 자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택함을 받은 자들은 매우 적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흐름입니다. * 청함을 ..

20. 계시록주석 2019.03.14

세마포 옷을 입으라

★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19:8) 좀 의아한 것은 부활의 몸이 옷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은 모습이 자연스러웠는데(창2:25) 왜 부활의 몸은 옷을 입어야 할까요? 죄를 짓지 않더라고 옷을 입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옷을 벗고 있었음에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지만 영원히 그런 상태로 머물지는 않습니다. 자녀를 낳고 자손이 번식될 때에는 당연히 옷을 입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부활체를 입은 성도들에게 선물로 주어집니다. 마치 천사들이 그런 상태와 똑같은 옷을 입은 것처럼 그렇습니다(계15:6). 세마포 옷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

20. 계시록주석 2019.03.14

준비된 어린 양의 혼인식

★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계19:7) 우리라는 표현은 전 지구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입니다. 장자로서 어렵게 살았던 유대 성도들과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 성도들이 다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대로 이루어진 영광을 보았기에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큰 공감을 가지고 크게 기뻐하며 찬양을 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을 묘사하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기약'으로 호칭합니다. 기약(가모스 - 혼례, 결혼식, 결혼, 혼인)이란 말이 '아직 도달하지 않은 약속'처럼 느껴져서 의미가 불분명하게 전달됩니다. 이르렀다(엘덴 - 부정과거, became)와 준비되었다(헤토이마센 - 부정과..

20. 계시록주석 2019.03.14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

★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19:6) 1절에서와 같이 허다한 무리의 음성이 들리는데 마치 많은 물소리처럼 들리고, 큰 우렛소리처럼 웅장함을 주었습니다. 요한이 이렇게 기록한 것은 그 소리가 정확하게 어디서, 누구를 통해 말하는지를 보지 못한 까닭입니다. 역시 이 노래도 '할렐루야'로 시작합니다. 허다한 무리들의 노래는 세 번 모두 할렐루야로 시작합니다. 무엇을 찬양했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이 땅을 다스림을 노래했습니다. 이것은 일곱째 나팔이 울리면서 하늘의 큰 음성이 말한 소리와 같습니다. 둘 다 같은 상황을 묘사하게 보입니다. 성도들이 그토록 바랐던 하나님..

20. 계시록주석 2019.03.14